최근 한국 제약산업에서 한국노바티스는 이른바 '초고가약제', '원샷치료제'로 불리는 약제들을 선보이며 혁신의 원조로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과거 '걸리면 죽는 병'의 동의어였던 백혈병을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변화시킨 것 역시 노바티스가 글리벡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이렇듯 노바티스는 제약산업의 획을 긋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군림 중이다. 최근 10~20년 사이 안팎으로 '리베이트'라는 석연치 않은 이슈를 짊어지며 회사는 고삐를 더 쥐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어야 했지만 영민한 선택의 일환으로 전략적 투자와 몸집 줄이기(인력감축)를 감행해 재도약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 정점에 유병재 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1년 전 격변의 시기에 회사 총괄을 맡게 된 그는 회사의 '목적'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노바티스 비전인 'Reimagine Medicine'을 언급했다. "환자 치료에 있어서 여러 방법론을 재정의한다"는 의미의 비전을 현실 가능한 목적로 만들기 위해 내부로는 직원들과 외부로는 정부, 기관, 환자단체들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유병재 사장을 만나 한국노바티스의 전략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다국적제약사출입기자모임이 지난 11일 한국노바티스 본사에서 진행했다.
-2021년 10월 한국노바티스에 합류했다. 지난 1년 동안 집중했던 일이 궁금하다.
첫 번째는 변화하는 글로벌 제약산업에서 한국노바티스의 역할, 방향성을 찾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내부 직원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직원들과 대화하면서 ‘목표 지향적’이 아닌 ‘목적 지향적’인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
목적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 가’를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노바티스의 목표가 매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 등이라면, 목적은 노바티스의 비전인 ‘Reimagine Medicine’이다. Reimagine Medicine은 ‘환자 치료에 있어서 여러 방법론을 재정의한다’라는 의미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 분야에 있어서 선도적, 혁신적으로 치료제를 개발해 나아가겠다는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또 구성원들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활동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조직 변경이 되면서 항암제사업부와 전문의약품 사업부과 통합됐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궁금하다.
노바티스가 잘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한 극복’을 잘하기 위해 사업부를 통합하고, 5가지 핵심 치료군(5 Therapeutic area)인 심혈관대사, 면역, 신경과학, 고형암, 혈액암에 집중해 시너지 창출을 도모하게 됐다.
방향성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환자에 대한 초집중’이다. 환자단체에 방문해 환자들이 치료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부와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처럼 외부 이해관계자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이 첫번째 성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요즘 화두로 떠오르는 ‘공동창조(Co-creation)’다. 현 시대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고 각자 요구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결국 이를 하나로 통합해 중론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공동창조’의 길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환자에 초집중하고 공동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겸손한 비전가의 정신’을 함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눈 앞에 놓인 이슈만 해결해서는 공동창조를 이룰 수 없다. 환자를 위한 비전이 있어도, 언론이나 식약처, 정부기관에 우리의 입장만 관철시키려 한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겸손함’이 필요하다. 겸손함에 대한 비즈니스적 정의가 ‘Pay attention to other’,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겸손한 비전가의 정신’으로 정부기관과 고객, 환자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서 ‘공동창조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창조의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공동창조와 관련해 협회, 본사, 정부기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특히 이번 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바이오헬스 산업을 Big 3 중 하나로 선정한 만큼 그 안에서도 글로벌 제약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 기업들과 한국 바이오 발전을 위해 글로벌 제약사로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노바티스는 혁신적인 의약품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 있다고 보는가?
개인적으로는 ‘Swiss Accuracy’ 정신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번 목적을 설정하면 매우 정확하게 파고드는 정신이다. 자원과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경제발전의 한계들을 제약, 시계와 같은 ‘정확성(Accuracy)’이 요구되는 분야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고, 그런 문화가 (노바티스의 혁신 치료제 개발 동력으로도) 작용했다고 본다.
두번째로 변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다. 방향이 맞다고 판단하면 바로 결정하고, 그 이후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완화시킬지 고민할 뿐 변화를 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때문에 결정도 굉장히 빠르다.
마지막 한 가지는 노바티스가 보유한 히스토리다.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개발 노하우가 있다. 현재 노바티스에서 진행중인 임상시험 건 수만 해도 약 5,000건에 달한다. 이러한 경함과 노하우가 혁신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초고가약제 도입이 예정돼 있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노바티스는 난치병 분야에서 신약 개발을 위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risk-taking) 제약사다. 그러다 보니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확률도 높지만 연구개발 비용도 높다. 앞으로는 신약 개발 시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환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런 희망이 없던 상황에서 빛과 같은 약이 나왔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이전보다 치료제 접근성은 분명히 강화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분법적으로 어떤 부분은 강화하고 어떤 부분은 절감하는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상황에 맞는 대화를 시도해 나갈 것이다.
-초고가약제 중 럭스터나 급여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기준에 대한 입장차 때문이다. 실명 위기의 환자에게 럭스터나는 분명 치료혜택이 큰 치료제인데, 이 치료제를 사용함으로써 실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기준을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에서 입장차가 존재한다. 나라마다 기준이 천차만별인 데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본사는 물론 정부와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졸겐스마와 킴리아가 보험 급여 적용됐을 때 본사의 반응이 궁금하다.
킴리아와 졸겐스마의 보험 급여는 기존의 팀들이 합심하여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 본사와 논의부터 환자단체, 정부와의 대화와 협업을 통해 보험 급여가 신속히 적용 됐고, 이로 인해 한국에 대한 위상도 높아졌다. 그 동안 허가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보험급여가 어려운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이 혁신적인 의약품의 환자접근성에 있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라로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올해 한국노바티스의 사업 목표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글로벌제약사 중 가장 많은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회사가 바로 노바티스다. 파이프라인 또한 매우 혁신적이다. 그러다 보니 올해 한국노바티스의 우선순위도 혁신치료제에 대한 환자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한정된 건강보험재정 안에서 혁신치료제에 대한 환자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도출된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나가려 한다.
또 직원들이 환자단체, 정부관계자, 스타트업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접점을 늘려 그들의 니즈를 이해하고 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 같은 과정에서 직원들이 ‘공동창조’의 경험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