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본부 韓에 둥지 틀고 '실반트'·'카바글루' 시장 진입 박차
"글로벌제약사 아시아 거점 선정의 좋은 선례 되길"
"대안이 없는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우선적인 한국 공급이 목표다. 유사파마의 강점과 레코르다티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한국이 아시아 허브로 자리 잡는데 기여하겠다."
레코르다티의 한국지사 대표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이연재 대표의 일성이다.
1926년 설립된 이탈리아계 제약사인 레코르다티는 지난해 희귀질환 파이프라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유사파마를 인수하며 매출 2.5조원에 달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이 과정에서 유사파마코리아를 이끌었던 이연재 대표도 자연스럽게 레코르다티 코리아의 수장직을 이어가게 됐다. 두 회사가 합병과 인수 절차를 이어가며 분주한 1년을 보내는 사이 이연재 대표는 한국 지사 외에도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마카오,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11개국을 총괄하는 자리에 서게 됐다.
아시아태평양 본부가 한국에 자리 잡는 성과를 이룬 이연재 대표의 다음 목표는 주요 약물들의 급여 진입이다. 레코르다티 코리아는 다발성 캐슬만병 치료제 실반트(성분 실툭시맙)와 고암모니아혈증 치료제 카바글루(성분 카르글루민산)를 국내 공급하고 있다. 두 약제 모두 급여 시장 진입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이후 2025년까지 고위험성 신경모세포종 치료제, 쿠싱증후군 치료제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명가로 부상하고 있는 레코르다티 코리아의 이연재 대표는 한국시장의 아쉬운 점으로 풍부한 의료환경과 의료진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신약 접근성을 꼽았다. 환자들에게 신약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치료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도 기여하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목표다.
지난 20일 뉴스더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연재 대표는 레코르다티 코리아의 청사진과 한국에서의 전략을 풀어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먼저 레코르다티가 어떤 기업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레코르다티는 100년 정도의 역사가 있는 이탈리아계 제약사다. 레코르다티 그룹은 원료의약품(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과 당뇨, 고혈압, 감염 등을 다루는 스페셜티 & 프라이머리 케어(Specialty&Primary Care), 다발성 캐슬만병, 고암모니아혈증 등을 다루는 희귀질환 등 3개 영역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레코르다티는 2007년 올펀 유럽(Orphan Europe)이라는 제약사를 인수·합병하면서 내분비 분야 희귀질환 치료제 판권을 구입해 레코르다티 희귀질환 영역을 출범했다. 이후 2022년 영국계 제약사 유사파마(EUSA Pharma)를 인수·합병하면서 희귀질환 포트폴리오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유사파마와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하다.
국내에는 유사파마의 지사만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덜했으나, 글로벌에서는 서로 다른 두 회사를 합병하다 보니 문화가 다른 두 회사 직원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또 전 직원에게 레코르다티 희귀질환의 비전, 전략을 제시하고, 성장할 조직임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시아 총괄지사 사장이자 한국의 대표이사로 아시아의 성장 가능성과 한국의 시장성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해야 했다. 현재 공급중인 제품의 성장 가능성부터 향후 출시될 제품이 가진 잠재력, 이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중장기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성장까지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레코르다티 코리아의 제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 부탁드린다.
주요 제품으로는 다발성 캐슬만병 치료제 실반트와 고암모니아혈증 치료제 카바글루가 있다.
실반트는 국내 다발성 캐슬만병 치료에 유일한 치료옵션이다. 다발성 캐슬만병(이하 MCD)은 두 개 이상의 림프절 부위에 비정상적인 림프 증식이 존재하는 진행성 전신 염증 질환이다. 특히 병인이 알려지지 않은 특발성 다발성 캐슬만병(이하 iMCD)은 고열, 야간 발한증, 피로, 체중감소, 부종, 빈혈, 림프절병증, 신부전, 간·비장 비대 등을 동반해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합병증 및 사망으로 이어진다.
특발성 다발성 캐슬만병(iMCD) 환자의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이 필수적이지만 질병의 희소성과 모호한 임상 증상으로 인해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환자 수는 2021년 기준 약 700명 대로 추정되고 있다. 질환 특성상 환자 수가 적고 감별 진단이 어렵다 보니 아직 정확한 질환명을 진단받지 못한 숨은 환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카바글루는 NAGS(N-acetylglutamate synthase) 결핍, 이소발레르산혈증, 메틸말론산혈증, 프로피온산혈증으로 인한 고암모니아혈증에 사용되는 국내 유일한 치료옵션이다. 고암모니아혈증은 암모니아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발생하는 대사 이상 중 하나다. 개별 효소의 작동에 문제가 생겨 암모니아가 효과적으로 처리되지 않아 농도가 상승하게 돼서 신경독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국내 고암모니아혈증 환자 수는 정확히 파악이 어려우나, 전체적인 요소회로 대사 질환 유병률을 볼 때 인구 35,000명당 1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카바글루와 같이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고암모니아혈증의 경우 환자 수가 손에 꼽힐 정도로 극히 드물다.
더불어 2025년까지 고위험성 신경모세포종 치료제와 쿠싱증후군 치료제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유사파마와의 인수·합병 과정으로 인해 일정이 다소 지연된 부분이 있어 마음이 급한 상태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대안이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국내 공급을 서두르고 있다.
-레코르다티 코리아가 국내 희귀질환 영역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성이 궁금하다.
단기적으로는 절실한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고, 중장기적으로는 ‘희귀질환’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제약사가 되고 싶다. 최근 다수의 제약사가 희귀질환을 중시하다 보니 시장의 원리로 경쟁이 치열해지겠지만,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시판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경쟁보다는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예상한다.
동일한 질환의 치료라도 스펙트럼을 보면 어떤 치료제는 앞단을, 어떤 치료제는 뒷단을 치료하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제약사들의 경쟁으로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경쟁이 치열해져 우려되기보다는 다양한 치료의 스펙트럼에서 환자들이 선택권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지사가 아시아를 총괄하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라 생각된다. 어떻게 한국 지사가 아시아 총괄을 맡게 됐나?
먼저 나는 유사파마가 2021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부를 설립하고자 할 때 처음 합류했다. 유사파마의 주요 품목이었던 다발성 캐슬만병 치료제 실반트는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나라다. 때문에 본사에서 한국에 거는 기대가 컸고, 유사파마 아시아 태평양 지역본부를 한국에 설립하게 됐다.
지난해 3월 레코르다티가 유사파마를 인수·합병하면서 유사파마 코리아의 사명이 레코르다티 코리아로 변경이 됐고, 레코르다티도 유사파마와 마찬가지로 본래 아시아에 지사가 없던 상황이라, 유사파마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부를 그대로 승계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마카오,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11개 국가를 총괄하고 있다.
-한국과 해외를 비교했을 때, 희귀질환 치료제의 보험급여 환경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해외에서는 희귀질환에 대한 지원이 관대하다. 환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거나 치료제를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경우 환자가 손쉽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정부, 협회, 단체의 기금 조성이 활발한 편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진행 중인 협회들이 있지만, 기금을 조성하기에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편 국내에서는 최근 소아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제의 보험 급여가 물살을 타고 있다. 소아 희귀질환뿐만 아니라 희귀질환 및 희귀의약품 공급 전반에 대해서 폭넓은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레코르다티 코리아를 운영하며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한국이 좋은 치료 환경과 보험 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신약 인허가부터 약가 협상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글로벌에서는 저평가 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한국 시장이 글로벌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임상 환경이 잘 갖춰져 있고, 의료진들의 전문성이 출중하고 진료 경험이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다. 신약이 국내에 출시됐을 때 환자들이 신약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치료 성과를 거둬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코리안 패싱’과 같은 사례가 생겨났다고 본다.
레코르다티 희귀질환의 아시아 총괄 지사를 맡고 있지만 본사에 보고할 때 한국의 상황을 대표적으로 말할 기회가 많다. 국내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가 크고, 앞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도입할 때 한국 시장에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부분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본사 차원에서는 한국에 출시했을 때 어떤 이점이 있을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레코르다티 코리아는 아시아 총괄 지사이긴 하지만 한국을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레코르다티 코리아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아시아 지사의 거점을 고민할 때 한국을 우선 고려할 수 있도록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국내 희귀질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희귀질환은 질환의 인지도 자체가 낮다 보니, 실제로 겪지 않는 이상 그 질환이 어떤 질환인지 대중들은 알기가 어렵다. 질환에 대한 인식이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낮다 보니 환자들이 정확한 질환명을 진단받기까지 몇 년이 소요되는 등 '진단 방랑'을 겪는다.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 치료 예후가 안 좋아지면 환자 입장에서도 국가 재정적으로도 손해가 된다.
7,000여 개 이상의 희귀질환을 각각 조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안에서도 발병률이 높은 질환부터 시작해 인식을 높이는 활동이 필요하다. 희귀질환은 희귀해 보이지만 사실 살펴보면 주변에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수가 적지는 않다. 의료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희귀질환도 더 많이 발견될 것이고, 숨은 환자들도 더 많이 발굴될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도 확대되어, 환자도 의료진도 질환을 적시에 발견하고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국내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에 기여하기 위한 레코르다티 코리아만의 계획이 있는가?
레코르다티 코리아가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희귀질환은 모두 환우회 조직이 어려울 정도로 환자 수가 적다. 따라서 환자들이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어떻게 전달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질환 인식 증진 활동 등을 통해 과거에는 환자분들께서 정확한 질환명을 진단받기까지 약 4~5년이 걸렸다면, 이 과정을 1~2년 또는 몇 개월로 단축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또 희귀질환을 담당하면서 느끼는 부분 중 하나는 환자가 있으면 치료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가족, 즉 2차 간병인의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특히 형제·자매가 희귀질환자일 경우, 그렇지 않은 형제·자매가 부모의 보살핌에서 소외되는 모습을 보며 희귀질환자가 있는 가정 전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여력이 없지만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레코르다티 코리아 환자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린다.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고위험성 신경모세포종 치료를 진행 중인 병원에 치료제 일부를 무상 공급했다. 고위험성 신경모세포종 치료제는 평생 투여하는 것이 아니며, 대부분 5세 이내에 치료가 종료된다. 따라서 5살 이내에 치료가 완료되는 것을 가정하고 그중 일부를 무상 공급했다. 다행히 환자분들의 치료 경과가 좋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대표님 이력을 보면 희귀질환에 특화돼 있다. 계기가 있었나?
장기간 제약 산업에 종사하면서 치료제나 수술 등 달리 치료 방안이 없는 질환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은 치료 선택 옵션이 많지만, 희귀질환의 경우 치료 옵션이 거의 없다. 치료제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제약사 내 한 사람으로서 치료 옵션이 많지 않은 희귀질환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나름의 소명 의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