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백혈병환우회는 올해 6월15일 창립 21주년을 맞아 지난 21년동안 환우회 활동과 함께 변화된 이야기를 함께 할 '서로가 생명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위로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수기 공모전을 백혈병 등 혈액암으로 투병·간병 경험이 있는 환자와 환자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뉴스더보이스는 당선작인 정희정 님(필명 드므)의 수기를 본인과 환우회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지금은, 쉼표
-류시화 작가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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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알 수 없어서 물음표다. 이 정도 나이면 살 만큼 산 것 같은데, 이제 산다는 게 조금 뭔지 알 듯도 한데, 맙소사.
“만약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해서 헤매는 때가 있다. 명치가 콱, 뜨거운 피가 순식간에 뒤통수 최고 봉우리까지 단번에 오를 때가 있다. 뭉쳐져 버린 감정의 찌꺼기가 둥둥 떠올라 시야가 어두워질 때가 있다. 걷는 걸음마다 질퍽한 늪이 생겨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오직 나를 겨냥한 불운이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사방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삶이라는 길바닥에 처참하게 내동댕이쳐졌다.
“치료하지 않으면 3개월 정도…, 예상합니다. …바로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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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했던 삶은 까맣게 탔다. 정답을 한참 빗나갔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무엇을 하든 활활 불사르며 온 마음을 다했기 때문이었을까. 블랙홀이었다. 온갖 생기를 다 빨아들였다. 꿈에서조차 듣지 못했던 병 이름이었다. 지독하게 아팠다. 불운이었다. 의사의 단 한 마디로 내가 누리던 일상에 큰 구멍이 생겼다. 검사하러 잠시 들른 성모병원이 내 거처가 되었다. 응급실, 혈액 내과 일반병동, 항암 격리병동까지 내 몸뚱어리는 쉼 없이 이동되었다. 매 끼니처럼 방송으로 주의 기도, 성모송 등이 흘러나와 내 귓속으로 스몄다. 비릿한 급식 냄새가 코에 들어와 토하지 않도록 코를 닫고, 귀와 눈을 열며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침대에 맥없이 누운 채 하릴없이 들려오는 기도 구절 한 단어씩을 곱씹어 보는 날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내 마음대로 되는 좋은 건 하나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마음 흘러가는 대로 두다 보면, 아픈 몸 때문에 속절없이 나쁜 마음이 모래성처럼 생겨났다. 입을 크게 벌린 시꺼먼 구멍 속으로 내 마음은 작게, 더 작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무엇에게도 기댈 수 없는 나날이었다.
멀쩡한 줄만 알았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나는 까만 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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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끝나가던 어느 날,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발송처는 백혈병 환우회였다. 작은 꾸러미 안에는 소독젤 여러 개와 예쁜 다홍빛의 양장 노트가 들어 있었다. 산타가 보내준 선물처럼 소중히 받아 들었다. 노트를 열어보니 ‘책 읽기 모임’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백혈병 환자 역할은 처음이다 보니 환우회 안에 독서동아리가 있는 줄도 몰랐다. 동아리 이름은 쉼표,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소모임이었다. 바깥은 겨울이어서 추웠다. 병을 앓느라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섣불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덩달아 내 마음까지 얼어붙었던 나날이었다. 쉼표, 그 이름을 잠시 기억의 서랍에 넣어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마음만 먹고서 겨울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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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표)’을 그릴 때 손의 힘을 살짝 빼고 아래로 뻗치면 금세 ‘, (쉼표)’가 만들어진다. 이 둘은 생긴 것이 닮았지만 그 기능은 완전히 다르다. 마침표가 나온다면 하나의 문장이 끝장났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쉼표를 만난다면 문장의 호흡은 달라진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미풍을 맞아서 새로운 마음과 기대를 해야 할 시기였다.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았다. 책을 읽을 거라면 그래도 여럿이 나을 것 같았다. 용기를 냈다. 동아리 ‘쉼표’ 모집 웹페이지에서 [신청하기]를 클릭했다. 첫 만남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화면에 나타나는 내 얼굴과 목소리가 낯설었다. 줌이라는 화상회의 앱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말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당황하고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되돌아오는 말들은 나긋나긋한 봄바람을 닮아 따스하기만 했다. 병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그 자리에서 나누는 말은 피부로 와닿았다.
이러한 마음은 쉼표의 카톡방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아픈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그 누구든 아플 수 있고 또 이겨낼 수 있다고,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더 괜찮아질 수 있다는 마음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나면 내 마음에 몽글몽글한 구름 하나가 생겼다. 세상에서 내가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보이지 않는 응원이 거기에 있었다. 마음이 뒹굴 수 있는 꽤 푹신한 쿠션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책 하나가 가슴에 남았다.
[ 나? + 우리! + 쉼표 , ]
우리가 살아나가는 길은 구부러져 있는 물음표처럼 생겼다. 코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 모르는 사이에 그 길은 휘어지기까지 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무엇이 더 있는 줄도 모르는 깜깜한 우주 하늘 아래 우리가 제 각기로 힘을 다해 살아간다. 하늘을 받친 그 땅 위에는 생명이 산다. 검게 변해버린 나를 건드려본다.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일지 모른다. 빛이 들지 않는 깜깜한 그곳에 놓여있다고 해도 서둘러 마침표 찍을 일이 아니다. 마침표를 그리려던 손을 아래로 살짝 내리기만 하면 쉼표의 꼬리를 만들 수 있다.
‘쉼’이란 단어가 커다란 구름 아래 단비가 되어 쏟아진다. 내 몸과 마음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나는 매장된 게 아닐 거라고 믿어볼까. 그저 어둠 속의 작은 씨앗일 뿐, 병이 왔다고 내 삶이 몽땅 끝나버리지는 않았다.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서둘러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다. 아직은 더 살고 싶다. 삶이라는 길에서 우당탕, 잠시 고꾸라진 김에 후회 없이, 내게 주어진 이 어둠 속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쉬면 되겠다. 지금은 파종의 시기, 나는 완치를 기다린다.
까맣게 타버린 점 하나가 살짝 움직인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획을 살짝 삐침 해놓은 듯한 모양이 앙증맞다. 검정 씨앗에서 살짝 뿌리가 생겨난 모양, 바로 쉼표 모양이다. 이제 싹이 움트기를 기다리면 된다. 삶의 여정은 예기치 않은 병 때문에 물음표였다. 나는 블랙홀처럼 무한히 수축하여 검은 점이 되었지만 그건 또 다른 씨앗으로 변모했다. 파릇한 싹이 지상에 고개 내미는 그 날, 온전히 햇빛과 바람을 맞이할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 무엇이든 더 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씨앗이 되어 쉼표를 만난다.
둥글고 완만한 그 어깨에 빳빳한 고개를 누이고, 뿌리의 그 작은 꼬리에 부산했던 발을 걸쳐볼까나. 봄비가 온다. 깜깜했던 사위가 촉촉해진다. 나는 발을 뻗고 기지개를 켠다. 투둑, 떡잎이 바깥세상으로 얼굴을 디민다. 사방이 눈부시다. 초록이 사방에서 고개를 들이미는 봄, 나는 몸을 우뚝 세운다. 비가 그치고 볼에 한 솔기 바람이 닿는다. 암흑같은 우주를 넘어서 이곳까지 닿은 햇살이 어른어른,
나는 살아있다.
작고 연약하지만 조그마한 뿌리 하나 내민 그 쉼표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