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10명 중 6명이 여성…환자의 삶의 질 '50점' 그쳐
한국의 유전성혈관부종(HAE)환자들의 진단 방랑 기간이 평균 19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의 증상 발현 평균 연령은 19.6세로 약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고 나서야 진단명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환자들의 질병조절 상태를 나타내는 혈관부종조절검사(AECT, Angioedema Control Test; range from 0 to 16)에서도 약 60%의 환자가 10점 미만으로 조절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응답해 환자들이 증상 조절에 따른 어려움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 값은 7.56점에 불과했다.
국내 환자들은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의 삶의 질(AE-QoL, Angioedema Quality of Life; range from 0 to 100) 검사에서도 50.6점을 기록해 질병으로 인해 삶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은 삶의 질 지표 중 두려움/부끄러움 영역에서 66.36점을 나타내 인간 기능이나 영양, 피로를 나타내는 다른 지표들에 비해 심적인 부담을 토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강혜련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가 책임 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국내 유전성혈관부종환자 27명이 설문에 응했다. 연구 결과는 아시아태평양알레르기천식임상면역학회(APAAACI) 2023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이번 결과에 대해 민수진 한국유전성혈관부종환위회 회장은 "저 역시 진단방랑을 30년 가까이 겪은 환자"라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어렵고 힘들게 HAE를 진단받는다는 설문조사 결과에 매우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민 회장은 "진단방랑 뿐만 아니라 증상의 지속적인 발현은 일상생활을 위협하고 삶의질을 무너뜨리는데, 이러한 상황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예방치료제의 도입"이라고 강조하면서 "예방치료제만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면 정상적인 사회.경제생활을 영위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표를 맡은 강혜련 교수 역시 "이번 조사는 유전성 혈관부종이 실제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국내 환자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큰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질환에 대한 인지도 향상과 빠른 진단 전략, 신약에 대한 접근성 확대가 한국 내 질병 부담을 줄이는 데 매우 중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유전성 혈관부종은 반복적인 통증을 동반하며, 보통 얼굴, 사지, 복부 및 상기도에 주로 발생하며 상기도에 심각한 부종이 발생할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인구 5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 진단을 받은 환자는 150여명으로 추정된다.
유전성혈관부종 치료는 장기 예방요법, 단기 예방요법, 급성 악화 시 응급대응치료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장기 예방요법 치료에는 다나졸이라는 남성호르몬제가 사용되고 있지만 여러 부작용과 가임기 여성 환자에서 가용하기 어려워 투약 비율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단기 예방요법은 혈관부종의 급성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방적으로 미리 복용하는 약제지만 국내 도입된 약물은 없다.
현재 국내에서 급성악화 시 응급대응치료로 사용되는 약제로는 피라지르(성분 이카티반트아세테이트)가 유일하다. 또 글로벌에서 출시된 유전성혈관부종 예방요법 치료제 중 국내에서 허가를 받은 약제는 탁자이로가 있으나 아직 급여권에 진입하진 못했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적기에 진단을 받으면 급성 발작으로 응급실에 내원하는 일이 거의 없고, 적절한 치료로 일상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어 '조속한 진단'과 '예방요법제'의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