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과 현장경험 접고 하달과제 치중…"커지는 박탈감, 희석되는 자긍심"
보건의료 정책을 바꾸겠다는 꿈과 소신으로 보건복지부에 입사한 의사 공무원들은 2024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국장과 과장, 서기관, 사무관으로 보건부서 곳곳에서 묵묵히 진일보한 의료정책을 위해 매진하는 의사 공무원들.
뉴스더보이스 취재결과, 올해 1월 현재 보건복지부 본부 기준 의사직 공무원은 14명이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지하다시피 이중규 건강보험정책국장(고려의대, 예방의학과 전문의)과 정통령 공공보건정책관(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전문의)이 국장급으로 의사 공무원을 리드하고 있다.
이어 과장급에는 김한숙 보건의료정책과장(경희의대, 내과 전문의)과 정성훈 보험급여과장(전남의대), 전은정 구강정책과장(경북의대, 예방의학과 전문의)가 포진되어 있다.
김한숙 과장은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전문병원, 의료질평가지원금, 의료전달체계 등 핵심적 보건의료 정책을, 정성훈 과장은 상대가치개편과 의료수가 등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전반을, 전은정 과장은 치과의사협회와 구강보건 관련 정책 등을 총괄하는 보직 공무원으로 성장했다.
이들 과장을 제외하고 의사 공무원 허리 역할을 뒷받침하는 중간 인력풀은 많지 않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휴직과 파견 의사 공무원 복귀이다.
휴직을 마치고 올해 1월 복귀한 임영실 과학기술서기관(건양의대, 가정의학과 전문의)이 보건의료정책과에서 일차의료 활성화 미션을 부여받았고, OECD 파견을 마친 이동우 보건사무관(연세의대, 신경과 전문의)이 작년 11월 의료자원정책과 신의료기술과 병상관리를 맡고 있다.
행정 경력을 축적한 중량급인 임영실 서기관과 이동우 사무관의 향후 보직 발령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행정경력 베테랑 줄어드는 의사 공무원들…중도 사직과 질병청 이동
매년 2~3명 복지부에 입문한 의사 출신 보건사무관은 어디에 있을까.
배홍철 보건사무관(한양의대, 예방의학과 전문의)이 육아휴직에 들어간 조영대 보건사무관(연세의대, 가정의학과-예방의학과 전문의)를 대신해 보험급여과에 긴급 투입돼 의료수가를 담당하고 있다.
필수의료총괄과 이민정 보건사무관(건국의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은 현정부 국정과제인 필수의료 지원 보장성 계획과 재평가 업무를, 의료보장과에서 개칭한 지역의료정책과에 이정우 보건사무관(이화의대, 내과 전문의)이 가치기반 일차의료 체계 구축과 모델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건강정책과 김보람 보건사무관(연세의대, 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지역보건법과 지역보건의료기관 및 지역사회 통합건강증진사업을, 변호사 자격을 겸비한 박동희 보건사무관(조선의대, 내과 전문의)은 정신건강관리과에서 전국민마음투자 지원사업 등 정신건강 시스템 구축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의사 공무원 막내 격인 김다혜 보건사무관(대구가톨릭의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은 생명윤리정책과에서 생식세포, 배아, 줄기세포 및 유전자 검사와 치료 관련 정책을, 김지현 보건사무관은 질병정책과에서 공공보건정책 연구 모임 등 달라질 보건 정책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중견 의사 공무원으로 WHO 파견 중인 공인식 과장(경희의대, 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올해 말 귀국 예정이다.
복지부 세종청사에 근무 중인 의사직 공무원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개인사정으로 중도 퇴사한 보건사무관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 질병관리청으로 이직한 의사 공무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2022년부터 젊은 의사들의 5급(사무관) 특별채용 지원이 사라진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올해까지 없다면 3년 연속 복지부 신규 의사 공무원 부재이다.
다행인 점은 복지부에 전달된 2024년 신입 보건사무관 4명 명단 중 의사(MD) 출신이 들어있다는 관측이다.
행안부에서 복지부 인사과로 신입 공무원들 인사 관련 자료가 넘어오는 2월 중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보건학 박사 등 신규 발령하는 보건사무관들의 명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젊은 의사들 복지부 지원 급감 "오더에 의한 정책, 보건정책 보람 찾기 힘들어"
문제는 의사 공무원들의 지속성이다.
남아있는 의사 공무원들이 세종청사 출근을 언제까지 지속할지 단정하기 힘들다.
행정고시 공무원들과 같은 5급(사무관)으로 출발해 동일한 급여체계에서 매일 같이 반복되는 업무를 소화하고 버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보다 대학병원 교수와 봉직의, 개원의 등 동료 의사들의 급여와 처우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차지하고 복지부를 선택했을 때 가진 자긍심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 일각에서 바라보는 색안경도 부담을 더한다. 의사 출신이라 기대했는데 제도와 수가 모두 개선된 게 없다, 행시 공무원보다 오히려 더하다 식의 비아냥을 감내해야 한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보건의료 모든 정책은 사무관에서 출발한다'는 말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쏟아지는 법안 개정과 국정과제, 지시사항을 수행하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보건정책은 사무관이 아닌 부서 과장이 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의사로서 현장경험과 전문성은 접어놓고 결론이 나 있는 정책을 위한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경직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허탈감이 커지는 실정이다.
복지부 근무를 경험한 봉직 의사는 "과거와 달라진 복지부 내부 상황을 자주 듣고 있다. 보건사무관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현장에 입각한 실행방안을 마련해 시행했을 때 변화된 의료현장을 보면서 느낀 보람은 갈수록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의사들이 복지부를 지원하지 않은 이유에 워라벨과 낮은 급여도 있겠지만 보건의료 정책 개선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힘들다는 부정적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의사 공무원들이 행시 공무원들과 함께 보건정책을 고민하고 추진해야 진일보한 방안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공무원 출신 다른 봉직 의사는 "고시 중심 관료사회에서 의사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다. 복지부 내부도 각자도생 상황에서 공무원들 중 일원에 불과하다"라며 "보건의료 쟁점 현안에서 의사 공무원들이 과도한 소모품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