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정과제와 환자들의 목소리가 만나 일라리스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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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정과제와 환자들의 목소리가 만나 일라리스를 안다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4.01.2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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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비타·코셀루고 이어 세번째로 경평생략 확대 수혜
이르면 2월 약평위 상정...건보공단 협상도 속도낼 듯

지난해부터 국회와 언론의 주목을 받아온 노바티스의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치료제 일라리스주사액(카나키누맙)의 급여등재 절차가 한층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2월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도 가능할 수 있다는 후문이다. 

사실 일라리스 건강보험 적용은 환자들과 임상의사들의 절실한 목소리에 비춰보면 많이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 약가제도 틀내에서 등재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던 약제 급여화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중증·희귀질환치료제 신속등재' 약속이 큰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갑갑했던 급여 도전의 역사=잘 알려진 것처럼 일라리스는 2015년 12월30일 '일라리스주'로 국내에서 시판허가를 받았다. 당시 적응증은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CAPS): 가족성 한냉 자가염증성 증후군(CAS/ 가족성 한냉 두드러기(FCU), 머클-웰스 증후군MWS), 신생아 발현 다발성 염증 질환(NOMID)/ 만성 영아 신경 피부 관절 증후군(CINCA)과 ▲전신성  소아 특발성 관절염(SJIA), 두 가지였다. 

이후 노바티스는 '일라리스주' 허가를 취하한 뒤 2018년 8월9일 '일라리스주사액'으로 이름을 바꿔 재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종양괴사인자 수용체 관련 주기적 증후군(TRAPS), 고면역글로불린D증후군/메발론산 키나아제 결핍증(HIDS/MKD), 가족성 지중해 열(FMF) 등 세 가지 적응증을 더 갖고 있다.

급여 논의는 첫 허가 때부터 시작됐는데, 2017년 10월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랐다가 비급여 판정을 받았었다. 당시 약평위는 급여 평가에서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CAPS)에 아나킨라(키너렛), 전신성 소아 특발성 증후군(SJIA)에 토실리주맙(악템라)를 대체가능 약제로 봤었다. 관련 전문학회 역시 아나킨라와 토실리주맙의 대체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문제는 극희귀질환을 주적응증으로 하는 특성상 일라리스 입장에서는 이런 약제들과 비교해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답정너'처럼 약평위는 '비용효과성 불분명'을 이유로 비급여로 심의를 마쳤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약평위 회의자료를 보면, 스코틀랜드의 의료기술평가기관인 SMC, 캐나다의 CADTH는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에 대해,  SMC와 영국의 NICE는 전신성 소아 특발성 관절염에 급여를 권고하지 않았다.

경제성평가라는 일반 등재 절차로 급여 진입을 시도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을 뿐 아니라, A7국가에 모두 등재돼 있었어도 이처럼 급여를 권고하지 않은 HTA 국가가 있었던 건 분명 일라리스 급여 평가에 악재였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일라리스 급여논의는 환자와 임상의사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서랍 속에 꼭꼭 잠겼다가 윤석열 정부 등판과 함께 2022년 5월경 다시 기지개를 폈다. 두번재 도전에 나선 것이다. 이는 노바티스 측이 국정과제에 '중증·희귀질환치료제 신속등재'가 포함되자 새로운 활로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심기일전'한 결과로 보인다.   

급여등재 길 열어준 국정과제와 경평생략 제도=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노바티스의 기대는 실제 현실이 됐다. 정부가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생략 제도 적용대상에 삶의 질 개선 효과를 입증한 소아 주적응증 희귀질환치료제를 2023년 1월부터 포함시켰고, 일라리스도 당연히 대상이 됐다. 회사 측이 2022년 말 등재신청을 철회한 건 경평생략 확대제도를 적용하려면 절차상 신청을 다시 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이 유전자에 따라 세부질환이 여러 개로 나뉘는 데다가 아직 질병코드조차 없는 질환들이 있어서인지 이후 절차는 녹록하지 않았다. 급여기준과 위험분담 방식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컸던 것이다.

실제 소아 경평생략 확대 첫 수혜 약제인 쿄와기린의 X염색체 연관 저인산혈증(XLH) 치료제 크리스비타주사액(부로수맙)은 급여신청부터 등재까지 4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표 신속등재' 제도인 급여평가와 협상기간 단축(각각 30일)의 위력이었다.

두번째 대상이 된 아스트라제네카의 신경섬유종 치료제 코셀루코캡슐(셀루메티닙)은 다소 지연되기는 했지만 작년 1월31일 급여등재를 재신청해 만 11개월이 올해 1월부터 급여목록에 진입했다. 

이들 약제와 비교하면 일라리스는 매우 더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작년 4월경 재등재 신청이 이뤄졌고,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약제급여기준소위원회와 위험분담소위원회를 거쳐 약 10개월만인 올해 2월 약평위 상정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작년 9월 이후 속도가 붙은 건 잇따른 환자들의 국민청원과 언론보도, 강선우 의원 등 국회의 관심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또 국정과제에 해당되는 약제인 만큼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와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도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증·희귀약제 신속 등재에 조금 더 힘을 실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중구 심사평가원장님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국회의원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직접 챙기겠다고 하셔서 수월하게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닌 것 같다"며 "저희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환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최근 뉴스더보이스를 포함한 언론에 호소한 CAPS 환아 보호자. 

뉴스더보이스와 인터뷰에서 "10년 이상 CINCA 환자들을 봐 왔는데, 이 아이들이 중간중간 증상이 나빠질 때가 있다. 아이들의 성장 때문에 약 용량이 부족한 경우에는 약을 증량하면 되지만, 증량으로도 조절이 안되는 때가 오면 다른 약을 써봐야하는데 지금은 옵션이 키너렛밖에 없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며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토로한 이소영 교수(한림대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일라리스가 이번 약평위에 실제 상정돼 통과될 경우 약가협상기간도 30일 간 주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급여 등재는 그야말로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절차와 과정이 순조롭게 속전속결로 진행될 지는 알 수 없다. 

샅바싸움 길어지면 고통도 길어진다=심사평가원은 최근 일라리스와 다이이찌산쿄의 유방암치료제 엔허투(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에 대한 급여지연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다소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내고 "신약 검토 과정에서 제약사의 임상 효과에 대한 근거자료 및 재정분담안 등 관련자료 제출이 지연됨에 따라 일부 약제의 등재 기간이 늦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경평생략 약제는 비용효과성이 불분명해 제약사의 관련 자료 제출이 필수적"이라면서 "신약의 평가기간 단축을 위해서는 제약사가 약제의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완결성 있는 자료를 제출하는 등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평위 상정이 가시권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심사평가원과 노바티스 간 샅바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런 샅바싸움이 길어진 만큼 치료제를 목놓아 기다리는 환자들의 고통도 길어진다는 데 있다. 정부 국정과제와 환자들의 목소리, 국회와 언론의 관심이 한데 어우러져 국내 첫 진출 이후 8년여만에 급여 첫 관문에 서게 된 일라리스. 2월 약평위에 쏠리는 눈은 어느때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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