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항암제’ 선등재후평가 모델, 신속도입 차원에서 벤치마킹 필요
"신약, ‘ICER 가치’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1994년 노바티스 입사로 시작해 제약산업계에 종사한 지 30년을 맞이한 배경은 KRPIA 신임 회장은 다국적제약출입기자모임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간의 경험이 녹아든 제약산업 발젼 방향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했다. '혁신가치 인정'이라는 다국적제약기업 최대 화두를 정책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해외 사례를 제시하며 직접적으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코리안 패싱'이라는 현상을 불러온 계기 역시 신약에서만 유독 엄격한 약가정책이라는 점을 역설하면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KRPIA는 배경은 신임 회장의 임기 시작과 함께 내부 조직과 이사회 주요 구성원도 바뀌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제약업계를 대변하는 협회의 위상 역시 재정비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제15대 회장으로 임시 시작과 함께 사노피 한국과 호주, 뉴질랜드 리드로 선임돼 "일 복 많은 사람"이라고 자평한 배경은 회장은 임기 내 정부의 '혁신 신약 가치 인정'에 대한 정책 변화에 최전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올해부터 정책 전면에 나서며 목소리를 내게 될 그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KRPIA 15대 회장으로 취임에 대한 각오와 소감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사노피 아벤티스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이전부터 KRPIA 회원사이자 BOD 멤버 및 부의장으로서 협회와 같이 일을 해왔다. 현재 KRPIA는 이전보다 굉장히 강해졌다. 이영신 부회장님을 비롯해 최인화 전무님 등 훌륭한 멤버들이 주축이 됨으로써 KRPIA 미션을 추진할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또 BOD 멤버들도 많이 바뀌었다. 3분의 2가 한국인 멤버로, 모두가 해외경험도 많고 국내 및 글로벌 시장에 대한 좋은 통찰력을 갖고 있다. 새로운 관점과 인사이트를 토대로 KRPIA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부분들이 갖춰졌다고 생각하며, 잘 해 나가겠다.
-.최근 정부가 혁신가치 보장성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KRPIA 차원의 정부를 향한 정책적 요구사항과 방향성은?
정부가 올해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신약 가치인정’이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들어갔다. 신약의 혁신성 및 가치인정, 중증 환자의 보장성 강화 등 (환자 접근성 향상의) 토대가 만들어진 것 같아 좋은 출발이라 생각하며, 또한 고무적인 성과라고 본다. KRPIA가 지향하는 부분과 이번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공통점이 많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구체적 방안이 나와야 실질적으로 환자들에게 신약이 신속하게 공급되고, R&D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KRPIA에는 다양한 국가의 48개 회원사가 속해 있다. 미국, 프랑스 등 폭넓은 해외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정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건설적인 제안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으로 정부에 제안한 사안이 있었다면?
두 가지가 가장 핵심적인 이슈다. 첫 번째는 한국은 신약 도입이 여전히 너무 늦다. 일본의 경우 같은 신약이 동일한 시기에 허가를 받아도 2~3개월 안에 보험이 급여되지만, 국내는 아무리 빨라도 18개월 길게는 2년이 걸린다. 보완사항까지 있다면 4~5년이 걸린다. 통계자료를 봐도, 글로벌(미국, EU 등) 최초 허가 기준으로 1년 안에 한국에 도입되는 신약의 비율은 일본과 미국에 비해 매우 낮은 5% 수준이다.
신약을 환자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효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또 항암제와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을 보면, 알려진 질환은 7천 개 정도지만 신약이 개발된 영역은 10%도 안 된다. 프랑스를 예로 들면, 신약이 개발되면 허가되자마자 정부와 약가가 협의되지 않더라도 빠르게 선등재 시키고, 사후에 평가하는 제도가 있다. 신속도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런 부분을 밴치마킹해야 할 것 같다. 국내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지원체계(GIFT) 제도도 시범사업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심사기간을 단축시키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등을 광범위한 관점에서 면밀하게 봐야 할 것 같다. 도입이 시급한 약들에 대해서는 좀 더 넓은 관점을 갖고 신속등재 등의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신약의 가치인정’이다. 신약 개발의 역사는 30년 정도 됐고, 신약을 개발할 때 100만 개 중 한 개만 데스밸리를 통과해 출시되는 현실이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매우 큰 리스크를 안고 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제약사들도 제네릭 기반에서 신약 개발을 향해 가는 추세다. 제약사들의 동기부여는 신약 가치를 인정받을 때 나오고, 이로부터 수익을 창출해 R&D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ICER 가치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등 약가정책이 많이 달라져야 한다. 2006년 선별등재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국내 의약산업의 변화와 발전과 함께 국민들의 양질의 의료에 대한 요구도 또한 높아졌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 신약가치가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국내제약사들도 R&D 쪽으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중국과 일본, 동남아, 싱가포르 등 R&D를 어디에 유치할 것인지 경쟁하는 상황에서 R&D 인지도가 있는 나라에 우선적으로 투자가 갈 수밖에 없다. 여러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R&D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보험재정은 한정돼 있으니 구조적인 부분도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약품 신약 비중의 경우 해외에서는 전체 의약품 비중에서 신약이 60~70%인 반면, 한국은 10%도 안 된다. 지난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건강보험재정의 전체 의약품 지출 비중 중 신약은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약제 복용, 클리닉 쇼핑 등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보험재정에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신약 예산책정을 할 수 있다.
-정부의 사후관리 방안에 대한 KRPIA의 입장 과 방향성은?
사후관리는 전체 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일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사후관리 시스템은 통합되지 않고, PVA (가), (나), (다) 형부터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 사후관리 등 너무나 세분화돼 있어 이로 인한 중복적 약가인하가 자주 일어나는 실정이다.
사후관리는 필요하지만, 중복적인 부분은 탈피해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시스템이 간소화돼야 예측이 가능하다. 현재 정부는 PVA 등 약가에만 치중한 사후관리 제도를 운영하는데, 그로 인해 행정적인 부담도 높다. 경증질환 치료 대비 중증질환 치료에 건보 보장을 강화하는 등 구조적인 측면을 고려해 시스템을 운영했으면 좋겠다. 너무 약가인하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 우려도 있다.
국내 신속한 신약 등재에 대한 제도 및 정책적 개선 없이 사후관리 강화는 결국 또 다른 신약 접근성을 저해할 것이다. 한예로 획기적인 경평제도 개선(획기적인 ICER 유연성 적용 등)이 현실적으로 개선되기 전까지는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국내도입 활성하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경평면제제도의 확대실시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자입장에서는 최근 KRPIA가 신약비중 등 이례적으로 정책에 대한 메시지를 내고 있어 고무적이다. 지속 계획이 있는지?
외국에 가서 경험해 보면 의약품 비중 시스템이 전혀 다르고, 배울 부분이 많다. 특히 전체 의약품 비중 중 신약이 차치하는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작년에 해당 데이터를 발표했을 때도 의외라고(생각보다 신약 비율이 적다) 보는 시각도 많았다. 결국 혁신형 제약기업이나 국내기업이 신약개발을 하게끔 독려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평면제 및 ICER 가치 등 모든 게 연결돼 있어 KRPIA는 기회가 있는 대로 정부에 말씀드릴 예정이다. 정책결정은 정부가 하는 것이고, (정부가) 바라보지 않았던 이슈를 바라보게 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제약사들과 신약 약가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는지?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많은 회사들이 있지만 R&D 투자를 하려면 큰 스케일이 요구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종근당, 유한 등 국내 탑 제약사들은 글로벌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시장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제약산업 특성상 신약의 경우 1년 사이클의 소비재와 다르게 장기적인 흐름을 보고 과감하게 매출의 15~20%를 투자를 하는 등 Risk-taking 해야 미래를 볼 수 있다. 글로벌 진출을 바라봤을 때 한국이 최초 허가 국가라고 하면 그 약값이 레퍼런스가 되는 건데, 재정 지출이나 신약 혁신보상이 미비하다면 전부 막히게 되는 구조이다. 국내기업에서 R&D 투자하는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 같은 의견이다. 신약의 가치인정과 같은 부분들을 국내 기업이 외국으로 진출할 때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각하는 게 다르지 않다. 신약의 미래 가치를 바라봐야 하는데 지금 당장 제도를 개정할 수는 없는 문제다, 그럼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견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의료대란과 관련해 실질적인 영향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하다.
당연히 병원과 환자에 연관된 상황이기 때문에 특히 입원환자와 외래환자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빨리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 같고, 저희 협회에서도 힘을 보탤 수 있는 한 도움이 되고자 한다.
R&D 투자 관련해서는 임상시험 건수만 보더라도 서울이 항상 TOP3안에 들고, 국내 대형병원의 임상시험 연구능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1상 임상시험 및 최초인체시험(FIRST-IN-HUMAN STUDY)의 경우, 회원사들이 매우 많이 유치하고 있다. KRPIA는 48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매년 국내 R&D 투자현황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2022년의 경우 국내 임상연구에 총 8천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매년 약 15%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으며 계속해서 R&D를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임상개발의 경우 90%가 항암제 및 희귀난치성 질환이며, 위·중증 환자들의 경우 임상시험 참여를 통해 신약에 접근하는 기회가 있기도 하다. 약가 정책에 관해서는 현재 중국이 한국 약가를 참고하기 시작했으며, 더 많은 국가들이 한국 약가를 밴치마킹하고 있다. 한국 약가가 매우 낮은 실정이기 때문에 ‘우선 다른 나라에서 먼저 출시한 후 한국은 좀 더 지켜보자’며 국내 출시를 못하고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코리아 패싱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앞서 말씀드렸지만, 비단 사후관리제도뿐만 아니라 경제성평가도 문제다. 신약 문제도 해결이 안 됐는데, 기존 의약품의 약가도 낮추게 되면 약가의 하향평준화가 이뤄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의료대란과 관련해 협회 쪽에서 대형병원과 임상시험 정상화를 위한 공식적인 의견을 낼 계획은 없는가?
신규 환자들이 등록(enroll)돼야 하는데 코로나 때랑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 때는 한국이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신규 환자 등록율이 높았다. 아직까지는 협회 차원의 공식 입장 표명 계획이 없고, 상황이 생각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병원들도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임상시험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 협회 차원에서도 신규환자 등록 상황과 영향력 등 전반적인 분석을 하고, 저희 입장을 개진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해 우려되는 부분들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KRPIA 차원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지원할 계획은 없는지요?
생각하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참여할 수 있는 국내 기업만 500개고, 바이오테크 회사는 350개가 있다. 아직 국내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으로 R&D를 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픈이노베이션에 있어 KRPIA 회원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초기 연구 단계(Early Research period)에서 글로벌 치료 영역의 R&D 리더들과 연결해서 중간데이터 피드백과 컨설팅이 이뤄지기도 하고, 시딩머니 형태로 이뤄지기도 하고, 컨셉이 만들어지면 기술 이전 형태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백신 쪽이 활발하다. 이런 것들을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공동개발, 공동상품화, 공동생산 과정에서 이정표를 가지고 글로벌 기업과 국내회사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신약 개발의 지속적인 파이프라인이 필요하고, 국내 제약사들도 글로벌제약사들의 노하우와 경쟁력이 필요한 상황이라 서로 윈-윈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지난 3년간 48개 회원사 중 15개 회원사가 다양한 형태로 활발하게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 중이다. 협회차원에서도 개별회원사가 아닌 보건산업진흥원이나 KOTRA와 함께 협업하고 있다. 명확한 계획이 생기면 소개하고 공유하도록 하겠다.
-KRPIA의 환자중심의 사업에 대한 방향이나 계획이 있다면?
환자들이 궁극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가 가장 큰 본질이다. KRPIA는 환자단체와 관련해서 계속 소통하고 의견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및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속적으로 환자단체를 중요한 축으로 가져가고 있다.
-올해로 제약업계 몸 담은 지 30년이 되셨다. 그 동안 업계 변화와 현재 트렌드는 어떤지?
트렌드 관련해서 많이 달라진 부분은 제네릭 일변도에서 신약개발에 대해 국내 회사들이 R&D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기억으로는 국내사가 첫 글로벌계약을 맺은 게 한미약품 면역억제제 제네릭 개발 성공이었다. 그 뒤로 신약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고, 성과도 많이 나고 있다. 바이오텍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게 큰 변화다.
그리고 윤리경영의 틀이 많이 잡혔다고도 생각한다. KRPIA에서 노력한 부분이 많이 있다. KRPIA는 매년 국내제약사들을 초청해서 큰 규모로 윤리경영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윤리경영 또한 환자 건강을 위해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아직까지 스펙트럼이 있긴 하지만, 정부의 지출보고서라던가 투명성 노력 등이 일관적으로 돼야 한다고 본다.
약가 정책과 관련해서는 항상 어려웠다. 항암제부터 쉽지 않았는데, 많은 제도들이 점점 세분화되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명확한 기준과 방향성을 가지고 추진했으면 좋겠다. PVA, 경평면제 등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R&D 전문가 등 외부 자문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유수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부터 투자자들, 환자단체 등 많은 자문을 받는다. 요새 트렌드는 환자 자문단을 만들어서 어떻게 임상시험 디자인 할지 많은 논의를 진행한다. 현재 엔드유저인 환자의 의견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