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폭발'+'싫어' 난발의 34개월

2022-01-10     문윤희 기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감정 컨트롤의 연속입니다. 34개월에 들어선 유진이는 기뻤다가 급 슬퍼지는 감정의 굴곡이 신기하리만치 빠르고 "싫어"라는 단어를 숨 쉬듯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분명 기분이 좋았다가 엄마가 부엌에서 아침을 차리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기분이 나빠져 울어버리고는, 쫓아가서 엄마가 달래주면 그게 또 싫은 지 더 우는 상황이 매일 아침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동요를 틀면 "끄라"고 했다가 실제로 음악을 끄면 "왜 껐냐"면서 꺼이꺼이 운다던가, 잘 먹던 빵에 쨈이 발라지지 않는다면서 짜증이 폭발하는 일이 다반사지요. 

밥을 먹기 위해 "손을 씻자"고 말하면 "싫어"라고 답하고, 옷을 갈아입자고 권해도 "싫다"고 말하고, 어린이집 가야해서 점퍼를 입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 신발도 신기 전까지 엄마와 대치 상황을 일으키는 '싫어 시즌'이 돌입했습니다. 

뭔가를 하기 전 엄마가 하는 권유에는 곧죽어도 "싫다"고 답하면서도 해야 할것은 또 다하면서 짜증을 부리는 상황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유진이가 겪는 감정의 롤로코스터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다 끝낸 상황에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떼를 쓰다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는 "산책을 좀 가볼까?"라며 웃는 다던가, 요구르트가 싫다고 내동댕이 치면서도 내동댕이 쳐진 요구르트를 보면서 안타까워서 우는 모습을 겪으면서 이게 뭔가 싶을 때가 많아집니다. 

이 시기의 변덕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통과의례 같은 것인 걸 알면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의 변덕에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육아의 신'으로 불리는 오은영 박사가 이럴 경우에는 잠시 상황을 피해 한숨을 돌릴 여유를 가지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 잘 되질 않습니다. 

한번은 화가 주체할 수 없이 나서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는 화장실에 들어가려 했는데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는지 다급히 쫓아와 닫히는 문에 부딪힌 경우도 있었죠. 

아찔했던 그 상황을 겪고 보니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아이에게 "유진아, 엄마가 이럴 때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어. 유진이 마음을 몰라서 미안해"라고 했는데 "미안해"라는 단어가 유진이에게 꽃혔는지, 이후부터 조금만 엄마와 아빠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생각이 들면 "미안해"를 연발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죠. 

최근들어 저는 엄마가 나를 키울 때 어떻게 대처했을까를 떠올려봅니다. 엄마는 내 성격을 물려준 분 답게 어떤 때는 불같다가도 어떤 때는 한없이 사랑을 쏟아내는 분이었는데 대게는 저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시곤 했습니다. 

명확하게 기억에 남는 제 똘끼발랄 행동은 5살 때였는데 그날 따라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던 거죠. 엄마는 졸라대던 저를 가만히 지켜보시면서 집안 살림을 차근히 하신 뒤 내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이자 "떡볶이 먹으러가자"며 손을 잡았습니다.  

떡볶이집에 가는 내내 얼마나 행복하던지 콧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너무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급하게 먹어 급체를 하게 됐고 그 덕에 저는 오후 내내 아픈 배를 부여안고 거실을 데굴데굴 굴러다녀야 했습니다. 

한참 아픈 배를 끌어안고 고생한 덕에  일찍 잠이 들었는데 자고 있는 중간 엄마가 제 이마를 쓰다듬으며 우시는 모습을 보고 말았죠.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나 때문에 우는 모습은 싫어서 저는 벌떡 일어나 엄마를 안았던 기억이 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아이에 대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만이 이 시기를 넘길 수 있는 최대의 보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사춘기'가 오듯 유진이의 잔인한 '네살이 되는 과정' 또한 금세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안 믿으면 또 어쩌겠나요. 이것이 인생인 것을. 이 또한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 저 역시 성장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