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떼기 싫은 40개월
"유진아. 이제 여름이니까 덥지. 기저귀 그만 하고 팬티 입을까?"
"아니, 계속 입을래. 편하잖아."
유진이는 엊그제부로 40개월이 됐습니다. 이제 개월 수를 말하기도 부끄러운 꽉 찬 4살이지요.
이전 글에도 쓴 기억이 있는데 유진이는 20개월 무렵부터 곧잘 변기를 이용했습니다. 아기 변기가 작아진 지금은 성인용 변기에 아기 변기 덮개를 달아서 함께 이용하고 있는데 유진이는 영 마뜩찮은 모양입니다.
유진이는 아기 변기를 이용할 때는 거리가 가까워 그랬는지 대소변을 보는데 불편함을 못 느끼다가 화장실로 가야하는 큰 변기를 사용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소싯적(그래봐야 30개월 전후)에는 대소변을 잘 가린다고 칭찬받던 아이가 변기의 위치가 변하고, 거리가 멀어지자 다시 퇴행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나마 대변은 잘 가렸는데 최근 보름 사이 유진이의 대변은 '똥 이야기'를 읽은 이후로 더 급격히 변기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응가들이 모여 관을 타고 '똥 공장'에 도착해 나쁜 것들을 없애고 농장 씨앗들에게 영양분이 된다는 이야기를 분명 즐겁게 읽었는데, 그 뒤로 변기에 대변 싸는 것을 살짝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 빼고는 말이죠.
어떤 날은 변기 앞으로 뛰어 가길래 "이제 좀 싸려나"했더니 고작 한다는 것이 손가락으로 변기를 가르키며 "응가들이 여기서 어디로 흘러갈까?"라며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엄마에게 던집니다.
"유진이가 응가를 싸면 관을 타고 똥 공장에 가서 씨앗들이 자라는 영양분이 되겠지?"
"아니야~. 똥은 공장으로 가지 않아. 물을 타고 강으로 가. 바다로 가."
앗! 순간 머리에 스치는 또 하나의 책이 기억난 엄마는 잠시 당황했습니다. 책 중에 '똥의 순환'을 담은 내용이 있는데, 동화라서 그런지 그 내용이 참으로 재기발랄했습니다.
"아이고, 유진아. 응가는 길거리에 쌌을 때만 물과 함께 개울로 흘러가고 강에 가고, 바다에 가는 거야. 유진이는 집 변기에서 응가 싸니까 변기는 똥 공장으로 가는 거야. 알았지?"
엄마에게 응가를 꼭 변기에 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유진이는 예상 밖의 정보에 멈칫하더니 곧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 응가는 변기에 싸야하는데 왜 길거리에도 있어?"
"그건 강아지나 고양이가 싼 거야. 사람은 길거리에 응가를 싸지 않아. 책에는 그렇게 돼 있었지만 집에서나 밖에서도 화장실 변기에 가서 싸야 해."
한참 뭔가를 생각하던 유진이는 곧 "그렇구나"라며 수긍을 하는 듯하더니 다시 엄마에게 선언하듯 말합니다.
"엄마, 난 그래도 기저귀에 쌀꺼야."
이쯤 되면 엄마의 앵그리 모드가 발동됩니다. "왜! 땀띠도 나고, 엉덩이도 물로 씻어야 하고 변기에 가서 똥도 다시 버려야 하고 기저귀도 새로 다시 차야 하잖아."
엄마의 잔소리에 듣는 둥 마는 둥 자기 방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가는 유진이와 그 모습에 더 씩씩 대고 있는 나를 지켜보는 남편은 "그건 엄마 사정이잖아"라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댑니다.
생각해 보니 기저귀를 차서 불편한 건 엄마였습니다. 응가를 싸면 씻겨야 하고, 젖은 몸을 닦여야 하고 로션도 다시 바르고 옷도 다시 입히고 하는 과정에서의 번거로움이 아이에게 팬티를 강요하는 이유였던 겁니다.
사실 남들의 시선도 만만찮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네 살이면 기저귀 뗄때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제 때 기저귀도 못 뗀 아이와 그 엄마네요"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죠. 그런 시선에 엄마는 괜한 승질을 아이에게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남편은 "기저귀도 좋아지고 아이도 불편해 하지 않는데 굳이 빨리 뗄 필요가 있느냐"며 속도 모르는 훈계를 하는데, 대소변 처리를 온전히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말이 속 좋은 핀잔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튼 유진이와 저는 오늘도 아침부터 변기에 첫 쉬야를 싸니 마니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침을 거뜬히 드시고 오는 대변 신호에 맘이 급한 엄마만 변기로 달려가는 멋쩍은 상황도 지속되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