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환경 속 의약품 벨류체인 대응 방안은?
"안보 따른 국가별 GVC 재구축 현황 파악 필요" 공급망 다변화·생산역량 강화 등 대비책 마련해야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의약품 생산 원료와 공급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다변화'와 '생산역량 강화'라는 두 가지 조건을 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각 국가의 안보에 따른 공중보건 대응 정책들도 변화하고 있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주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26일 '최근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의약품 GVC재편 및 주요국 대응'을 주제로 한 브리프를 통해 "최근 국내에서 요소수, 반도체 및 자동차 등의 GVC문제가 크게 불거졌지만 의약품 분야에서도 GVC가 중요하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조달부터 완성품 수출까지 GVC의 각 단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GVC(Global Value Chain)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 원료 조달, 중간재 생산과 제조, 공급과 유통 및 판매 등 소비자에게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다수의 국가 및 지역에 걸쳐 이루어지는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를 비롯해 고유가·고환율, 인플레이션의 위험, 물류비용 상승 등의 거시 경제적 변화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각국의 공중보건 대응 정책과 안보·통상정책 강화 등이 의약품 분야의 생산, 유통 및 물류 및 교역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각 국가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백신과 필수 의료제품에 대한 수출제한이나 관세 유예, 인허가 및 검역 관련 조치 등을 실시하고 있다. 2022년 7월 8일 기준 WTO에 통보된 코로나19 관련 국가들의 통상 조치는 488건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GVC 재편으로 제약사가 원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거나 운송 문제로 생산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의약품 GVC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개발, 생산, 유통 등의 지역적 불균형을 들 수 있다"면서 "원료의약품의 경우 2019년 기준 글로벌 원료의약품 생산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5%에 달할 정도로 코로나19 이전 API 생산은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는 비중이 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원료의약품 생산은 다른 의약품 생산에 비해 큰 기술을 요하지 않는 노동력 중심의 특성을 갖고 제조시 유해물질 발생으로 인해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이나 인도에 생산을 위탁하는 구조가 많은데 이들 국가에 생산 차질이 생기면 전세계 GVC 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문제는 코로나19 백신 생산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화이자의 경우 백신 생산에 280개 이상의 재료를 19개국 86곳에서 조달하고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최근 mRNA 백신에 사용되는 지질나노입자라든지 백신 생산 과정에서 필요한 튜빙, 플라스틱 백 등 약 100개가 넘는 원부자재가 백신 생산에 있어서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와 같은 GVC의 문제는 공급업체뿐 아니라 여러 하도급, 협력업체, 운송 및 물류업체, 특히 항공 화물 및 콜드체인 등의 운송 제약에 따라 다양한 리스크가 가중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이 GVC에 대응하기 위한 각 국가별 노력도 다양해 지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중국 등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데 집중하는 한편 필수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보장을 위한 행정명령 13944 발표(2020년 8월), 기존의 ‘Buy America’ 정책을 강화한 ‘Made in America’(행정명령 14005) 발동(2021년 1월) 등을 시행 중이다.
이와함께 보건부(HHS) 산하의 질병예방대응본부(ASPR)는 미국 정부 최초로 필수 의약품 공급망 및 제조 탄력성 평가를 발표했다. 올해 2월에는 행정명령 14017호에 따른 GVC 및 공급망 안정화 노력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EU 역시 지난해 2월 '신통상정책'을 발표하며 의약품 및 필수의약품에 대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비상시 접근성 다변화와 생산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일본은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공급망 강화 사업, ‘GVC 구축을 위한 일본 기업의 공급망 대응촉진을 위한 해외인증, 국제체제 구축 사업’, 백신 생산체제 강화를 위한 바이오의약품 제조거점 정비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또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제품이나 부품소재 생산거점의 일본 내 회귀에 관한 보조금 지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해외 수출이 중요하고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원료의 해외 수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세계 GVC 변동 등과 같은 국제적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 코로나19와 같은 공중보건 위기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보건 안보의 위협도 GVC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도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과 EU 등의 주요국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의약품 GVC 관련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약품 공급망 다변화와 자국의 생산역량 강화 등으로 의약품 분야는 특히 공중보건 위기 대응과 산업 진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의약품 분야에서도 해외 원료의존도가 높거나 GVC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 품목을 조기에 파악해서 큰 피해가 없도록 대처하고 국가별 GVC 재구축 현황이나 의약품 관련 정책 및 제도를 파악해 맞춤형 수출 전략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