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동정적 사용승인제도, 허가-급여 빠르다면 소용없어" 지적
임상약 치료목적 승인 기준을 두고 1상 이후로 정해야 한다는 환자단체와 최소한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3상 이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료계의 상반된 입장이 나왔다.
치료목적 사용승인은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환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 대체 치료수단이 없는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 등에 한해 임상시험 중인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라는 기준을 두고 환자단체는 보다 빠른 의약품의 접근성을, 의료계는 안전성에 무게를 두며 제도 운영에 각기 다른 입장을 밝혔다.
신약 공급 주체인 다국적제약은 최소한의 안전성과 치료 효과 확인을 위해 2상 이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내제약업계는 안전성 확보가 된 3상 이후를 임상약 치료목적 승인 시기로 봤다.
폐암 신약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비급여 약제비 환자지원 프로그램 운영 중, 환자 부담 50%)와 국내 개발 신약인 유한양행의 렉라자의 임상시험용 의약품 치료목적 사용승인제도 운영의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 여부는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6일 스페이스 살림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4회 환자의 날을 기념해 열린 '우리나라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동정적 사용제도와 환자지원 프로그램 운영현황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박인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신약들이 많이 나오지만 허가와 급여 사이에 격차가 심해 의약품 동정적 사용제도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면서 "허가를 받는 약제들이 급여가 빨리 된다면 이런 제도는 사실상 필요가 없는 제도"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라는 의미를 쓰는데 항암제는 그렇지 않다"면서 "담도암에서 임핀지가 1차로 들어왔지만 쓰는 것과 안 쓰는 것의 차이는 2개월"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렉라자의 경우 임상약 치료목적 사용승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럴 상황은 아니다"면서 "폐암치료제는 1차와 2차에서 차이가 없다"고 단었했다.
이어 "타그리소를 쓰는 환자들이 렉라자와 비교해서 '나는 돈을 내는데 왜 저분들은 돈을 안내냐'는 말을 한다"면서 "(폐암치료제를 쓰는 환자 사이에서도)형평성에 안 맞는다. 못 쓰는 환자들은 박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상시험용 의약품 치료목적 사용승인제도는 더 이상 쓸 약이 없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박 교수는 임상의사로 동정적 사용프로그램 신청 절차의 단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동정적 사용프로그램은 의사가 신청해야 하는데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약제를 들어오는데 필요한 통관절차도 필요하다"면서 "약을 신청하는 사이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 신청하는 행정절차를 보다 간소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상시험용 의약품 치료목적 사용승인제도 기준을 두고는 '안전성'을 중심에 두고 3상 이후 급여 전 시기가 적합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 교수는 "환자들은 동정적 프로그램 늘어나면 좋겠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제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신약의 급여가 한참 뒤에야 되니까 이런 프로그램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들어오는 신약 급여 속도를 보면 외국보다 3~4년은 늦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 약가가 전세계에서 가장 낮기 때문"이라며 "이는 우리나라 약가가 공개되면 다른 나라가 참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이유에서 보험제도를 손 봐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 "실비보험에 들어가는 돈을 건강보험으로 흡수해서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환자 역시 제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면서 "임상시험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동정적사용에 기댄다는 것 역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환자들의 적극적인 임상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정형진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임상·메디컬 위원회 위원장은 다국적제약 본사의 결정에 따라 동정적 사용제도 운영이 좌우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는 "다국적제약사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해 동정적 사용제도를 운영하지만 결국은 본사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진행이 가능하다"면서 "식약처 가이드라인에는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비용을 청구하는 제약사는 없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제약사 입장에서는 임상시험용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이지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아님에도 가이드라인 상에는 임상시험용 의약품 제공자로 규정돼 있어 다수의 환자가 IRB 심의를 받는다"면서 "이 외에도 약제 보관료, 폐기비용, 라벨링(영문을 한글로 제작)에서 드는 비용과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결국 허가와 급여의 문제다. 한국은 허가는 빠르지만 급여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급여가 되면 문제가 없지만 허가 후 급여가 안 되는 것에 대한 규정이 없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렉라자의 환자지원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법률적으로는 기존 대체제가 있거나 위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동정적 사용제도를 진행하는 것은 공정경쟁 저해 우려 있어 조심스럽다"면서 직접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국내제약사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엄 상무는 "임상시험용 의약품 사용은 안전성을 확보한 뒤에 제공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라면서 "국내 제약사들도 환자 지원을 해오고 있으며 이럴 경우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이다 보니 환자들이 참여의사를 직접 제약사에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를 적극 대응했을 때 병원과 의사와의 관계가 있어 행정적 절차가 소요되는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 이슈에 대해서는 "제약사가 공정거래법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하고 있지만 리스크는 안고 가게 된다"면서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타그리소와 렉라자를 보면 환자들은 형평성 제기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국내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해서 임상시험을 하려는데 환자가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인롤을 하는데만 몇년이 걸려 개발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공정거래법과 같이 말하는 이유는 환자 유인 목적이 아니라 인도적 목적"이라면서 "후발 개발사 입장에서는 임상을 진행하려 해도 환자가 없어 임상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 '임상용약 치료목적 사용승인' 현행대로
안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임상용약 치료목적 사용승인 적용 기준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과장은 "환자의 기회 제한이 될 수 있어 지금 선에서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현재는 해외 임상약까지 포함하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려는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혔다.
임상시험용 의약품 치료목적 사용승인제도는 국내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대상으로 2013년 시행됐고, 2023년 10월 19일부터는 외국 임상시험용 의약품까지 대상에 포함된다.
안 과장은 "주치의가 제시하는 환자 기록을 다른 분야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 적정하다고 판단하면 승인을 내리고 있다"면서 "정부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진행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료제출이 복잡하다는 의견을 들어 중복 서류 제출 과정을 개선했다"면서 "서류를 내는 것 자체가 추가적 업무인 것을 알지만 식약처 입장에서는 제출 자료가 있어야 검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해 식약처는 지난해 10월 임상시험용의약품의 치료목적 사용승인을 위한 서류 제출 절차를 개발자의 임상시험용의약품 제공의향서, 전문의 자격증, 의학적 소견서, 환자동의서(서명포함) 또는 서식 등으로 간소화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단체 입장에서는 임상약 사용 가능 시점은 임상 1상이후로 보고 있다"면서 "환자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의약품 접근성이 빨라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HnL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동정적 사용제도에 대해 “유럽의 경우 동정적 사용 등 신청에 대해 정부에서 거절했지만 유럽인권위원획 소송을 걸어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면서도 “제약사 입장에서는 정부와 법적 분쟁이 하나의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산 폐암 신약으로 제기되고 있는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서는 “공정거래법 45조는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며 “분유 무상제공과 신문 끼워팔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공정거래법 이슈로 보면 생명과 직결된이라는 전제가 있다”면서 “구체적 유효성 판단 기준과 이익 제공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효과 등을 살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공정위 인가를 받는 방안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