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이른바 (위법) 수익금 '제로'
필요예산 예비비 사용 등 절실
"모든 건 필요예산 증액분 삭감에서부터 비롯됐다. 그런데 그 중심에 소관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있다는 게 문제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연초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매일 걸려오는 민원전화만 200통이 넘는다. 윤영미 센터 원장은 "돈이 없어서 약을 제 때 구매하지 못하다보니 2~3일씩 공급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환자들의 고충도 크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지역약국이나 택배를 통해 의약품을 공급받았던 환자들은 서울에 있는 센터에 직접 방문해 수령해 가야 한다. 대체 센터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윤영미 원장은 최근 열린 시민·보건의료단체 초청 2020년 제1차 정책간담회에서 속사정을 설명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필수예산 증액분 삭감에서 나왔지만 연원을 찾아들어가면 식약처가 방조해서 20년간 진행돼 온 부적절한 센터 운영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윤영미 원장 설명부터 들어보자. 2014~2018년 최근 5년간 센터 필수 운영 예산에 대한 국고보조율은 37%에 불과하다. 나머지 63%는 이른바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그런데 이 수익금이라는 게 실구입가(수입가)와 청구액 간 차액에서 생긴다. 가령 보험등재 가격이 1만원인 의약품을 해외에서 8천원에 사왔다면 현 제도에 따라 8천원에 청구했어야 하는데 1만원에 청구하고 차액인 2천원을 수익금으로 챙겨 운영비로 써왔다.
이렇게 발생한 차액(수익금)은 5년치만 계산해도 65억원에 달한다. 명백한 실거래가상환제 위반이다.
오랜동안 지속돼온 센터의 위법적 행태는 의약품 유통에서도 발생했다. 현행 법률에 의하면 의약품 택배배송은 불법이다. 하지만 센터는 식약처 묵인아래 택배를 활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약품 변질위험 등은 아예 고려도 하지 않았다.
윤영미 원장은 취임이후 이런 문제들을 파악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일단 불법적인 상황을 없애는게 중요했다. 현행법령 위반인 수익금을 국고지원으로 전환하고, 위법적인 택배배송 문제는 지역거점약국 운영(위탁배송), 방문약료서비스, 지역거점센터 설치 등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 지역거점약국과 방문약료서비스는 지난해부터 이미 시범 운영에 들어갔고, 지역거점센터는 올해 예산을 확보해 추진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예산 증액분 110억1400만원이 전액 삭감되면서 이런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다. 윤영미 원장은 "일부 축소 또는 전환되는 사업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예 집행할 수 없게 됐다. 사실 현재로써는 인건비도 충당하기 쉽지 않은 살림"이라고 했다.
특히 더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위탁배송이나 방문약료서비스가 올스톱되면서 환자들이 직접 서울 센터에 찾아와 의약품을 수령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기영 센터 차장은 "어제는 환자 한 분이 제주도에서 센터를 방문했다. 경주에서 부부가 KTX를 타도 올라오기도 했다. 광주에서 새벽 4~5시에 기차를 타고 온다는 연락도 받았다. 환자들의 이런 고충을 직접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은화 센터 본부장은 "환자들 뿐 아니라 환자보호자, 병원, 교수님들까지 전화가 밀려오고 있다. 관심사는 대부분 언제 위탁배송 등이 재개될 것인지다. 불만을 제기할 '루트'를 물어보는 환자들도 많다"고 했다.
윤영미 원장은 "사실 이런 무기력한 상황을 보면서 자괴감도 든다. 지난해 예산논의 때 올해 (불법적인) 수익금을 없애겠다고 했고, 이 부분을 국고보조로 대체해야 한다고 요청했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다"고 토로했다.
그는 "센터 직원들의 고충과 운영예산도 큰 문제지만 비수도권 환자들의 접근성 부분이 가장 시급하게 해소해야 할 문제다. 우선은 예비비를 쓰고,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미반영분을 반영해주길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