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육아일기에도 썼던 기억이 있는데 유진이는 '안먹(는) 아기'의 대표주자로 내세워도 아쉬울 것 없을 정도로 밥을 정말 (어지간히)먹지 않는 아이였다.
돌 이전에는 핑거푸드(자기주도) 위주로 이유식을 진행했기 때문에 양이 적어도 '밥을 먹기 위한 훈련'이라 생각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유아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15개월 전후로 아이의 먹는 양이 직접 눈으로 확인되자 심경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걱정은 '저 정도만 먹고 활동적으로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을까'부터 시작해서 '내가 만든 음식이 뭔가 잘 못된 것은 아닐까'하는데 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아이의 '짧은 입'은 엄마의 고민거리가 돼 있었다.
아이의 먹는 양에 따라 엄마의 희비가 교차되는 시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난 뒤, 정확히는 36개월을 넘어서며 아이에게 일정한 패턴으로 '먹시기'와 '안먹시기'가 순환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의 조급한 맘도 어느 정도는 편하게 됐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아이가 안먹 시기에 접어들 때면 세상의 중심은 또다시 아이의 먹는 것 위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과일을 집중적으로 제공한다던가 한번이라도 잘 먹었던 음식을 생각해 내 만들어 바친다던가, 제발 한 입만 더 먹자고 사정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엄마가 먹는 것에 조바심을 부릴 때면 아빠는 남의 일인 듯 "그냥 둬. 안 먹을 수도 있지"하며 속 좋은 말을 하지만, 아이 먹는 것이 곧 엄마의 책임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입장에서는 속이 편할리 없다.
유진이는 다시 돌고돌아 먹시기에 진입했다. 바로 지난주까지 먹지 않아 엄마의 속을 태우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른 밥 공기 반을 넘게 먹고도 엄마의 주먹만 한 복숭아 두개와 블루베리 한 사발을 먹어 치운다.
아침진지를 든든히 드시고 배가 묵직했는지 화장실 가는 길에 그만 볼일을 보시고는 기저귀가 무거워졌다며 낑낑대는 아이를 보며 간만에 즐겁게 웃기도 했다.
나의 경우, 아이가 잘 먹는 시기에 엄마의 행복감은 거의 100% 수준까지 올라간다. 이런 행복감은 아마 엄마가 나를 키울 때 느꼈던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허겁지겁 간식부터 찾는 나에게 엄마는 제철 과일이나 간식을 챙겨 주셨는데 이때만큼은 나 역시 정말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댔던 것 같다. 엄마는 마루 중앙에 놓인 상을 마주하고 앉아서는 내가 복숭아 먹는 모습, 포도 먹는 모습, 수박 먹는 모습, 호떡이나 떡볶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다.
어린 맘에도 엄마는 간식을 같이 먹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게 신경쓰여 "엄마는 왜 안먹고 날 봐"라며 자주 물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안 먹어도 배불러"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이제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알게 됐다.
나 역시 아이 간식과 식사를 제대로 챙겨줄 수 있는 주말이 되면 먹을꺼리를 뭘로 내줄까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밥을 먹을 때도 그렇지만 한참 놀다 배가 꺼진 아이가 간식을 야무지게 먹는 그 입을 볼 때면 이 세상 근심이 어디 있었느냐 싶게 사라진다.
오물오물. 제 입으로 들어간 먹을거리를 맛나게 먹는 그 입이 내겐 커다란 행복을 안겨다 준다. 그렇게 아이가 간식을 먹는 내내 나는 아이의 입을 바라본다. 엄마가 날 바라봤듯.
이런 나의 이야기를 친한 지인에게 했더니 그 역시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그런 행복을 느끼고 있노라 했다. 그러면서 옛 어른들이 "논두렁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가 세상 제일 행복한 소리"라 했던 말을 전해줬다.
부모의 행복이 이리 소박할 줄이야. 새삼 깨닫게 된다. 평소 못 가진 것에 대해 불평불만이 많았던 내게 이런 소소한 행복이 가득가득 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 부모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다시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