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깜깜한 밤이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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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깜깜한 밤이 무서워요"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4.07.1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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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해진지 어언 6년이 됐다. 3살 언저리에는 미등을 켜 놓고 있으면 잠에 방해가 된다며 꺼달라고 했던 아이였다. 

그런 유진이가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며 불을 켜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에는 아예 방에 불을 켜고 자겠다며 떼를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아빠와 엄마는 "잠은 깜깜해야 잘 자"라며 극구 말렸지만 아이는 말 그대로 울고불고 떼를 써댔다. 오히려 불꺼진 방안에 자신을 혼자 두는 것은 "전인한 행동"이라며 우리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어둠을 편안하게 생각하던 아이가 갑자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까닭이 궁금해졌다. 알고보니 원인은 간단했다. 아이는 이린이 집에서 4시부터 5시까지 통합보육(등원부터 오후 4시까지는 정상보육)을 받게 되는데 그 때 형님반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강시'나 '몬스터', '유령', '좀비' 등의 존재를 알게 됐다. 

막연히 존재를 알게 된 유진이는 몇일 후 더 무시무시한 어둠의 세계로 초대됐다. 하원 후 들리는 놀이터에서 가끔 만나는 초등학교 2학년 언니와 놀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만 관련 동영상을 시청하게 된 것이다. 친철한 언니는 유진이가 "좀비가 뭐야?"하는 물음에 "이거야 봐."하면서 영상을 찾아 틀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하원을 담당하는 아빠는 동영상 시청에 매우 엄격해 평소에는 잘 관리해 왔지만 아이들이 어울리는 그 잠깐 사이를 방심해 유진이를 돌이킬 수 없는 어둠의 세계로 밀어 넣게 됐다.

이 조용한 충격은 아이의 머리 속에 꽤 오래 남아서 여전히 엄청난 파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아이는 엄마의 유도 질문에 술술 자신이 두려움으로 초대된 이유를 설명해 줬고 그 과정에서 좀비의 걷는 모습과 강시의 뛰는 동작, 몬스터의 흉칙한 얼굴을 어설프게 흉내내며 자랑스러워했다. 

사실을 모두 파악한 엄마는 그 동안 "그런 건 없다"고만 하면서 아이를 꾸중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문득 잠이 오지 않아 울며 잠을 청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그날 밤이 생각났다. 

어느 더운 여름날, 나는 집에 있지 않고 낮선 큰 이모의 집에서 놀게 됐다. 큰 이모집에서 조카와 기분 좋게 놀고 저녁이 되어 집에 가려 했지만 엄마는 데리러 오지 않았다. 이모는 엄마를 찾는 나에게 오늘은 오지 못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내 마음에는 설움이 내려 앉았다. 

큰 이모는 편안하고 깔끔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어색했고, 잠도 오지 않았다. 열린 방문 사이로 큰 이모가 마루턱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모에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모는 "눈을 감으면 잠이 온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전설의 고향 구미호'와 엄마의 부재가 혼재돼 설움이 폭발했다. 흐느끼던 울음은 어느새 통곡 수준이 되어 버렸고, 이모는 나를 크게 혼냈다. 

이모는 "그렇게 울어도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 한다"며 다시 자리에 누우라고 했다. 장난감도, 엄마도, 심지어 이불까지도 내 것이 아니어서 그날 밤은 한참이나 설움에 북받쳐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기억에서 현실로 돌아와 그 동안 유진이가 보면 무서워 할 '두려움'과 '어둠'을 주제로 한 책들을 꺼내 책장에 꽂았다. 그리고 자기 전 명랑하게 끝나는 이야기책 두 권을 아이와 함께 읽었다.

그리고는 며칠을 자연스럽게 어둠과 무시무시한 것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도록 잠자기 전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고,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아이가 자기 전 "토닥여 주세요"라는 말도 "아기 때나 하던거잖아"라며 핀잔 주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아이가 잠들 때까지 토닥여 줬다. 엄마의 부재와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유진이는 지금 이렇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 엄마에겐 꽤 지난하게 지나갔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유진이에게는 짧게 남길 바라면서.

여기에 더해 꽤나 현실적인 엄마는 '몬스터'와 '요괴' 등 유진이가 무서워하는 것들이 사실은 사람의 머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현실에는 없는 상상이라는 점을 매번 강조해 알려주고 있다. 

요즘 공주패션에 푹 빠진 유진이. 체육수업이 있는 날 원피스 입기를 고집하다 결국은 신발을 구두로 신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등원 길에 강아지풀을 뜯어 손에 간지럼을 태운 뒤 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일과 중 하나다. 
요즘 공주패션에 푹 빠진 유진이. 체육수업이 있는 날 원피스 입기를 고집하다 결국은 신발을 구두로 신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등원 길에 강아지풀을 뜯어 손에 간지럼을 태운 뒤 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일과 중 하나다. 

엄마 역시 어린 시절 그런 무서운 존재들로 인해 잠을 자지 못했던 밤이 많았음을 알려주자 유진이는 신기한 지 "엄마가 그랬다고?", "진짜야?"라고 자주 되묻는다. 

지금의 엄마를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인데, 자신과 같은 나이였을 때 그랬다고 하니 신기한 모양이다. 

그렇게 '어둠'과 '몬스터'를 위시한 무서운 것들이 점령했던 지난 겨울과 봄이 지나 여름이 오면서 아이는 잠들기 전 새로운 일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책을 2~3권 읽거나 즐겁게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을 하거나 또는 내일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해보는 것으로 잠자기 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진이는 요즘 잠들기 전 요구사항이 늘고 있다. 지난 화요일에는 잠들기 전 엄마에게  뽀뽀 100번을 요청했다. 물론 엄마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의 온 몸에 뽀뽀 100번을 해줬다. 

어제는 즐겁게 잘 수 있도록 '발바닥'만 간지럼을 태워달라는 요구를 해 와 이 역시 즐겁게 들어줬다. 

이렇게 유진이는 어둠과 두려움이라는 자신의 삶에 찾아 온 첫번째 과제를 즐겁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엄마 역시 사회생활에서 오는 부침을 심하게 겪고 있는 중인데, 아이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아이는 이렇게 엄마에게 삶의 에너지를 주고,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존재다. 그래서 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이를 낳으면 진짜 어른이 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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