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정심 심의 안건 정부 입맛대로…야당 "과도한 복지부 재량권 통제 필요"
보건복지부 내년도 125조원 규모의 살림살이에 대한 국회 심의가 이번 주부터 본격화된다.
하지만 100조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재정은 국회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관례화 되면서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 운영을 일정부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7일 전체회의를 열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2025년도 예산안 심의 안건을 상정하고 예산심사소위원회 심의절차에 들어갔다.
복지부 내년도 예산안은 총 125조 6565억원으로 전년 대비 7..4%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이다.
이중 보건의료 예산은 4조 2846억원, 건강보험 예산은 14조 1277억원이다.
복지부 예산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기금으로 편성된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건강보험 예산 14조원으로 한해 건강보험이 유지될까라는 점이다.
국회 상정한 건강보험 예산안 14조 1277억원은 기재부가 지원하는 국고 보조금이다.
한 해 동안 실제 운영하는 건강보험 재정은 100조원을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 예산안 자료 어디에도 건강보험 재정 관련 세부 내역은 없다.
건강보험 재정은 일반회계도, 특별회계도 아닌 셈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과 국민연금기금, 응급의료기금 등 국회 심의를 받는 기금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실제 예산은 건강보험 재정을 포함해 200조원을 넘은지 오래인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건강보험 재정 운영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되어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조에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25년도 예산안 125조 중 건강보험 14조 국고보조…전체 보험 재정 심의 대상 '제외'
건정심은 건강보험 종합계획 및 시행계획, 요양급여 기준, 요양급여비용 관한 사항, 직장 및 지역가입자 보험료율, 그 밖의 건강보험 관한 주요 사항 등을 심의 의결한다고 되어 있다.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가입자와 공급자, 정부 각 8명 등 총 24명으로 구성된 건정심 위원들이 건강보험 재정 집행 관련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건정심 구조는 정부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균형 배치이나 공급자 단체 8명을 제외하고 친정부 성향 위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나마 가입자 위원 중 민노총과 한노총 소속 노조와 환자단체 등은 건강보험 운영 관련 경륜과 현장감 등으로 가입자 중심의 의견을 개진하는 상황이다.
복지부가 국민건강보험법(제3조 2)에 입각해 국민건강종합계획을 수립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종합계획은 정권의 국정과제 이행을 포함한 건강보험 정책 큰 틀의 계획일 뿐 세부내용은 유동적이다.
100조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복지부 재량으로 집행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회 문제제기도 지속됐다.
그동안 건강보험 재정을 기금화해 국회 예산 심의를 골자로 한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법안 심의 과정에서 복지부, 진보단체와 의약단체 반대로 번번이 좌초됐다.
흥미로운 점은 건강보험 재정 기금화 법안은 야당의 단골메뉴라는 것이다.
여당은 복지부와 함께 건강보험 관련 정책을 구사해 정권과 지역구의 호감도를 높여야 한다는, 야당은 건강보험 관련 예산 심의를 법제화시켜 이를 견제해야 한다는 여야의 정치 생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진보시민단체와 의료단체도 건강보험 재정 운영의 국회 심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국민건강과 의료생태계를 지탱하는 건강보험 재정 운영에 정치가 개입하면 의료소비자와 의료현장 등과 다른 방향으로 재정 지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복지부 중심의 건정심 구조와 운영 자체에 불만은 있지만 입법부 간섭과 개입보다 낫다는 차선책을 지속하는 셈이다.
■건보법 의거 건정심 통한 건강보험 재정 집행…복지부에 과도한 재량권 부여
그러나 과도한 복지부 재량권에 대한 견제 기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회 예산 심의를 받은 보건의료 정책은 사업 목표 달성을 위해 담당 부서 공무원들은 최선을 다한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진행된 사업 목표치가 미흡하거나 예산 불용액이 과도하게 발생하면 여야의 질타와 해당 예산 축소 가능성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건강보험 재정은 건정심 보고 또는 의결을 거쳐 다양한 시범사업 운영이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 사업을 중단해도 이렇다 할 패널티가 없다.
일례로, 복지부 권역외상센터 사업 중 외상 전담전문의 인건비는 응급의료기금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국회 심의를 받는다.
시가보다 낮은 외상 전담전문의 인건비 책정과 365일, 24시간 대기인 외상센터 구조적 한계, 외상 전문의들의 잦은 이직 등으로 예산 불용액이 해마다 20%를 차지하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의 질책과 개선 요구 등을 거치면서 실제 예산 집행률은 그마나 개선되는 추세이다.
이와 달리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대상 입원전담전문의 사업은 건강보험 수가로 운영된다.
전공의법에 따른 입원환자 전공의 공백 개선을 위해 시범사업을 거쳐 수년째 시행 중인 입원전담전문의 사업에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은 복지부가 공개하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다.
입원전담전문의 인원수와 운영 병원 등은 외과계 입원전담전문의연구회의 복지부 정보공개 청구로 분기별 현황을 제공하는 게 전부이다.
전문의 중심 대형병원 정책 기조에서 배제된 입원전담전문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흔들려도 수가와 제도 개선은 매번 검토 중이다.
국회와 의료계, 언론 등의 지적이 없는 한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되는 다수의 정책과 사업이 치외법권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재정 운영 상황을 분기별 현황 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진찰비와 입원비, 수술비, 영상과 검체 등 검사비, 약제비, 치료재료 등 보건의료 영역별 건강보험 지출 총액 변화와 경향을 파악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회에 사후보고 형식 방대한 건강보험 사업…더불어민주당 "복지부 통제 방안 필요"
복지부에 정통한 의료계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당해년도에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응급의료기금이나 건강증진기금, 국민연금 등과 성격이 다르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 운영을 위해 일정부분 준비금을 적립하도록 되어 있다"면서 "기금화를 통한 국회 예산 심의 법제화는 가입자, 공급자, 복지부 모두 불편해하고 있다. 상황 발생 시 긴급하게 투입해야 하는 재정을 국회를 거치면 시기를 놓치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필요한 사업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복지부가 건정심을 통해 재정 심의 절차를 밟고 있지만 다소 느슨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공적보험 특성을 반영하면 어느 정도 국회 견제 기능도 필요하다"면서 "건강보험 기금화 문제는 공수가 바뀔 때마다 여야 입장이 달라져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국회 내부에서는 100조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복지부 통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복지부가 건강보험 운영 현황을 상임위원회에 보고하고 있지만 지출 후 사후보고에 불과하다.
복지부가 건강보험 재정 지출 현황과 향후 세부 실행계획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분기별 보고하는 실효성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거대 야당은 건강보험 재정 기금화의 장단점을 인지하고 있어 복지부 재량권을 축소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복지 수석전문위원은 "한해 10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을 현재와 같이 복지부 재량으로 집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금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건강보험 재정과 사업을 일정부분 통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 다수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입장에서 불편하겠지만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하는 거대한 건강보험 재정 집행의 감시와 견제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가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