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1조원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창출."
한미FTA 협상 당시부터 정부가 줄기차게 외쳐왔던 구호다. 윤석열 정부도 올해 초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을 포함한 3건의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향후 5년 내 연매출 1조원 이상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2개를 창출하고, 글로벌 6대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 목표의 절반은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치료제 케이캡정(K-CAB정, 테고프라잔)을 통해 오는 2027년 달성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게 실제 실현된다면 정부가 이른바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을 내놓은 지 30여년만의 성과가 될 것이다.
HK이노엔의 김기호 상무는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재형 의원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제약바이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위한 정책토론회' 패널토론을 통해 이 같이 말했다.
30년 가까이 제약바이오업계에 몸 담으면서 특히 보험의약품 정책 발전에 기여해 온 김 상무의 이날 발언은 케이캡정을 자랑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의지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지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김 상무는 사자성어 2개를 인용해 논리의 '얼개'를 만들었다.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하고 주도적으로 길을 새롭게 개척한다는 의미의 '응변창신(應變創新)'이 그것이다.
김 상무는 " K-CAB정은 2018년 7월 국내 개발 신약 30호,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로 국내 허가를 획득했다. 기존 국내 개발 신약들과는 다른 'Best-in-class Drug'으로 당시 글로벌 경쟁제품은 2014년에 일본에서 출시된 다케다의 Vonoprazan 밖에 없을 만큼 선도적인 신약이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그런데) 개발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10여년간 수백억원의 개발비용을 투입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도적인 신약을 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약가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김 상무는 중국 사례를 소개했다. 김 상무의 토론문에 담긴 실태는 이렇다. 중국은 신약 가격을 결정하고, 등재 후 2년 뒤부터 약가 사후관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원개발국의 약가를 참조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한국도 참조국가인 12개 국에 포함돼 있다.
HK이노엔은 앞서 2015년 케이캡정 기술과 관련해 1000억원대 중국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 규모가 3.6조원이나 되는 세계 1위 시장이다.
토론문에 따르면 이 시장에 Vonoprazan은 2019년, K-CAB정(중국 제품명 타이신짠)은 2022년에 허가받을 예정이었다. 따라서 이미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예상되는 Vonoprazan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약가 경쟁력 확보가 시급했다.
김 상무는 "당시 이런 상황을 인지한 정부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업계와 소통을 주도했으며, 그 결과 2016년 3월 '글로벌 진출 국내 개발 신약의 보험약가 평가 우대 기준'을 시행해 K-CAB정 등 국내 개발 신약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했다. 또 같은 해 7월 이를 더욱 강화·확대한 '7.7약가제도'를 시행하면서 국내 개발 신약 개발 의욕을 높임과 동시에 국내개발 신약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켰다"고 했다.
김 상무는 "이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에 힘입어 K-CAB정은 현재 미국, 중국, 브라질 등을 포함한 35개국과 수출계약을 체결했으며, 2028년까지 EU 등 100개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중국 등 6개국에 출시돼 본격적인 매출이 일어나고 있어서 2027년이면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에서 목표로 삼은 2027년 연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제품 2개 달성에 가장 근접한 신약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 상무는 이어 "K-CAB정의 이러한 글로벌 성과는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없었다면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없었다면 K-CAB정은 글로벌 시장을 포기한 채, 국내개발 신약 역사상 최단 기간 연매출 1000억원이라는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에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만큼 정부의 정책은 미래의 먹거리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7.7약가제도'는 2018년 한미 FTA 이행협상 과정에서 사실상 사문화돼 케이캡정과 같은 신약이 나와도 지금은 약가우대를 받을 길이 요원해 졌다. 케이캡정 또한 '7.7 약가제도'가 개정되는 과정에서 보험등재 절차를 진행했고, 실제 등재 시점은 개정 이후여서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김 상무는 "K-CAB정 보험약가 등재 당시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규정과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결국 K-CAB정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약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K-CAB정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케이캡정 하나로 만족하고 이 상황을 방치하고 있어야 할까.
김 상무가 인용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조사결과를 보면, 2023년 기준 국내 제약사가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은 1905개다. 이중 3상 임상 27개를 포함해 677개가 임상단계에 있다.
김 상무는 "(이처럼) 우리 제약·바이오업계는 글로벌 시장에 나갈 준비를 착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신약 민관협의체를 다시 개최해 제약바이오업계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소통을 통해 '응변창신' 모습으로 제약·바이오산업이 만년 미래 유망 신산업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핵심 먹거리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정책적 기틀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2016년 7·7 약가 제도의 부활 또는 7·7 약가 제도를 뛰어넘는 제도가 도입됐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상무는 제약바이오산업의 현 주소로 "더 이상 제약·바이오 산업이 정부에 의해 또다시 성장 가능성이 큰 '미래 유망 신산업' 으로 선정됐다고, 기뻐하지도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