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같은 HAE, '만약'을 대비할 수 있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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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같은 HAE, '만약'을 대비할 수 있게 해 달라"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4.08.05 0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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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주 최주호 씨, 2주 한번 탁자이로 자가주사로 '안정된 삶'
"같은 질환 앓는 어머니, 캐나다 모시는 계획 세우 중"
"환자에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질환, 정부에겐 '가격'이 중요한 질환"
"자녀 생각하면 캐나다 치료 환경에 감사, 국민 책임지는 치료 환경 갖춰야"

유전성 혈관부종(Hereditary Angioedema, HAE)을 앓는 환자들은 대게 자신의 삶을 '시한폭탄'에 비유한다. 언제 발생될지 모르는 발작과 부종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자주 서기 때문이다.

HAE를 앓는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발작과 부종은 기존 약물이나 치료법으로 증상 개선이 어렵다. 목(후도)에 부종이 생기면 기도를 막아 호흡이 불가능해져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장기에 급성으로 부종이 생길 경우 치료시기를 놓치면 역시 생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발작이나 부종의 비율은 환자마다 제 각각이지만 모두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고 있다.

민수희 유전성 혈관부종 환우회 회장의 증상 발현 사진(왼쪽)과 평소 모습. 인터뷰를 진행한 최주호씨의 요청으로 발현 전과 평상시 모습 사진을 민 회장 사진으로 사용했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체내 염증을 조절하는 혈장 단백질 C1 에스테라제 억제제가 결핍되거나 기능이 저하되어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유전적 특성에 따라 1형 HAE, 2형 HAE, 정상 C1억제제 HAE으로 분류된다. 유병율은 인구 5만 명당 1명 꼴로 환자의 수(국내 200명 내외)가 적으며, 질환을 아는 의료진 역시 드물다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 초기 증상은 유소아 시절에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알레르기, 단순 부종 등으로 취급돼 성인이 되어서야 정확한 진단명을 듣게 되는 이른바 '진단방랑' 역시 긴 질환에 꼽힌다.

국내에서는 진단도, 치료제의 접근성도 요원해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는 대표적인 희귀질환 중 하나다.

반면 글로벌 시장의 상황은 현격한 온도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HAE에 사용되는 주요 약물로 베리너트(C1 에스테라제 저해제), 피라지르(이카티반트아세테이트), 탁자이로(성분 라나델루맙) 등이 사용되며 질환 발생 전에 사용되는 예방적 요법과 질환 발현 시 증상을 완화하는 증상완화제가 사용되고 있다.

다만 HAE환자에게 한국은 험지나 다름없다. 예방적 치료제인 피라지르가 있지만 증상이 발현되고 나서야 쓸 수 있게 돼 있고, 예방적 치료제인 탁자이로는 급여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다.

제약기업이 환자를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 역시 한정된 선에 머물러 있다. 환자를 위한 교육은 물론 인식 개선까지 제약사가 환자와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을 막아 놓은 탓(환자 유인 행위)에 다른 국가에 비해 제한적인 환자 지원프로그램이 운영될 뿐이다.

때마침 뉴스더보이스는 캐나다에 거주 중인 최주호(41세)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그의 발언을 통해 유전성혈관부종이라는 질환이 가진 무게와 치료 환경의 차이를 들여다봤다.

-캐나다에 정착은 언제 하셨는지 궁금하다.

2006년 유학차 캐나다에 왔다가 완전히 이주를 하게 됐다. 2015년 심각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방문하게 됐고 유전성혈관부종을 진단 받았다. 당시 응급실 의사가 유전성혈관부종에 대해 알고 있던 차라 전문의사를 소개해 질병의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베리너트를 처방 받았다. 이후 피라지르에 대해 캐나다 정부에서 승인을 해줬다. 두 약제 모두 처음 사용할 때 간호사가 방문해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해줬고 언제든지 재교육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알려줘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 유전성혈관부종환우회 회원들이 연간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습.

-유전성혈관부종을 앓고 있다. 질환에 대해 환자입장에서 소개를 한다면?

유전성 혈관 부종은 시한 폭탄 같은 질병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느 부위가 부을지 몰라 일상생활이 매우 불편하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힘들고, 갑작스러운 부종으로 인해 중요한 일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마다 그 주기가 다르지만 심한 사람은 매일 부종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럴 경우에는 일상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해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지는 병이다.

-현재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나?

2주에 한 번씩 피하지방에 주사(탁자이로)를 맞고 있다.

-한국에서는 예방적 치료제(탁자이로)가 급여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유전성 혈관부종치료제 1회 주사 가격이 2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 치료로 인해 한 개인과 그 가족의 삶이 달라진다면 사회적 기회비용으로 전혀 크지 않는 비용이라 생각한다. 북미에서는 피라지르, 탁자이로를 만드는 다케다가 운영하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 Onepath (www.onepath.ca)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각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 지원을 제공하고, 치료 과정 내내 환자와 보호자에게 교육과 훈련, 약물 및 용품 배달, 보험 청구 지원, 지속적인 후속 관리 등을 제공한다.

한국과 캐나다 중 어느 나라가 더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은 세게 어느 나라보다 의료 분야에 있어서 발전돼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관심이 더욱 더 필요한 환자들에게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게, 의료 수준에 맞는 지원 프로그램도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약사 지원 프로그램 외에 치료환경에서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점이 있다면?

캐나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에 비해 환자 선택이 폭이 넓다는 점이다. 현재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 주사제는 앞서 언급한 3가지 종류가 있다. 베리너트는 정맥 주사제로 증상이 생겼을 때 바로 맞을 수 있으며 효과가 강력하다. 때문에 치과 치료나 외과적 시술을 받을 때 미리 맞을 수 있다. 단점은 정맥 주사이기 때문에 바늘에 거부감이 있거나 주사 스킬이 부족할 때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피라지르는 배에 놓는 피하주사제다. 정맥 주사에 비해서 효과가 덜 하기 때문에 증상이 생긴 초기에 맞으면 효과가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두 치료제는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상비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울 때에도 소지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탁자이로는 시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맞는 주사이기 때문에 훨씬 간편하다. 말씀 드린 모든 주사제는 장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선호도와 상황에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약을 선택해서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탁자이로를 사용하고 있지만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베리너트와 피라지르 모두 1회분을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의사가 처방을 해준 것으로 혹시 한 가지 약이 듣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모든 약을 상비하고 있을 수 있다.

한국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비교를 해본다면, 주사제를 받기 위해 병원에 직접 방문할 필요가 없고, 약제사용을 위한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혈액검사도 받지 않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병원에 가야하는 수고를 매번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주사제를 다 사용해야 병원에 방문해 다음 주사를 받아 올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응급상황이 언제 올지 모르는 환자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

캐나다와 굳이 비교를 하자면, 여기에서는 의사를 1년에 한번 만나며 한번 만날 때 12개월 치의 약을 처방 받는다. 환자는 1회 분을 사용하면 다음 1회분을 사용하기 전에 2회의 주사제를 집으로 배달 받는다.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사제 1회분을 가지고 있게 만들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한국과 다르게 캐나다에서 주사제는 전액 의료 보험이 되기 때문에 개인이 부담하는 금액이 없다.

최주호씨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피라지르와 베리너트, 탁자이로를 모두 소지하고 있다. 
최주호씨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피라지르와 베리너트, 탁자이로를 모두 소지하고 있다. 

-유전성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입장에서 한국 정부에 전할 의견이 있다면?

말 그대로 희귀한 질환을 가진 환자로서, 삶에 대한 불안감이 찾아올 때가 있고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하게도 된다. 캐나다에서는 나를 담당하는 전문의사가 있고, 딸을 담당하는 또 다른 전문의사가 있다. 모든 외과, 치과, 알레르기 등의 치료에 관해 언제든 상담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주사제를 더 처방받을 수 있으며, 다른 의료적 지원도 유전성 혈관부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받을 수 있다.

이제 열두 살이 된 딸아이를 이 나라에서 평생 잘 돌봐 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한국 정부도 이런 어려운 상황에 있는 희귀질환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나라가 책임져 질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 수 있도록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어머니를 모시는 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부모님 두 분이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계시고, 두 분 다 영어가 불편하셔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상황이 달라지면 초청 이민으로 부모님을 캐나다로 모실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계기도 궁금하다.

나와 내 딸은 캐나다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 나라의 치료 방법이나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름을 알게 됐다. 한국의 희귀질환 환자들이 나라의 수준에 걸맞은 의료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

-인터뷰를 정리하려 한다. 기사화됐으면 하는 말씀이 있다면?

유전성 혈관부종은 이미 나온 주사 치료제 말고도 경구 투약이 가능한 많은 약들이 임상 실험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해외 사이트를 직접 찾아 다니며 정보들을 찾고 있다. 오히려 의사들이 이 질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 차원에서 희귀질환에 관한 의료진 교육과 치료제에 관한 최신 동향들을 파악해 환자들에게 전달해 주면 좋겠다. 수년전에 피라지르가 급여권에 진입했다는 기사를 봤지만 실제 병원에서 어떤 경로로 그 주사제를 처방 받을 수 있는지 알기까지는 5년 이상이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어디서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환자도 정보의 부재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의료 공백에 놓이지 않길 바란다.

HAE Canada는 2010년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전문가들이 환자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결성한 단체다. 홈페이지를 통해 환자들에게 기본적인 질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HAE Canada는 2010년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전문가들이 환자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결성한 단체다. 홈페이지를 통해 환자들에게 기본적인 질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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