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변이 마다 증상 다른 'PROS'…'대증치료' 정책 지원 절실
"권역별 희귀질환센터, 제 몫 하도록 전문인력·환경 갖춰야"
비조이스, 국내 도입 시급…"고가약제 '보험진입' 지연 우려"
PROS는 PIK3CA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해 나타나는 질환으로 피부 조직이 너무 많이 자라거나 비정상적인 모양을 갖게 되는 희귀질환이다. 피부나 혈관, 뼈 등 유전자 변이가 나타난 조직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 중에서 화염성모반, 정맥 이상, 신체부위 과다성장 등 2가지 이상 증상을 가진 경우 'KT증후군'으로 지칭한다.
환자 대부분이 3~4개 이상의 혈관, 피부 등과 관련된 다양한 증상을 겪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신체 일부(몸통, 다리 또는 팔)에서 과도하게 지방이 축적되거나, (뼈)성장이 이뤄져 신체 불균형으로 인한 극심한 삶의 질 저하를 겪게 된다.
1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해 환자 수가 극히 적은데다, 환자 개인마다 다른 증상으로 인해 같은 치료 경험을 공유하기도 어렵다는 특성을 지닌다. 국내에는 2014년 네이버 카페 '한국PROS환자단체'가 설립되면서 질환에 대한 정보 공유가 시작됐으며 아직까지 완치제는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노바티스가 유방암치료제로 개발한 알페리십(제품명 피크레이)이 PIK3CA 유전자 변이에 치료 효과를 보이면서 '비조이스'라는 제품명으로 2022년 FDA 승인을 받았지만, 국내 도입은 정해지지 않았다. 환자들은 치료제 외에도 몸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으로 인한 대증적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지원은 한정적인 상태다.
PROS환자를 위한 카페 개설에서부터 의료파업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에 맞서 'PROS환자'를 대변하고 있는 서이슬 한국PORS 환자단체 대표를 최근 뉴스더보이스가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이를 표현하는 용어 변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환자단체 대표로 가지는 고민들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희귀병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담은 육아서적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펴내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 진행한 인터뷰 주요 일문일답.
-환자단체 소개에 앞서 PROS라는 질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저희 환자단체 이름이 ‘한국PROS환자단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질환명은 PROS가 아닌, KT증후군이다. KT증후군은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lippel Trenaunay Syndrome)을 줄여 부르는 말로, 쉽게 말해 ‘선천성 복합 혈관질환’으로 이해하면 된다. KT증후군은 주로 팔과 다리, 또는 신체 곳곳에 선천성 모세혈관 과다형성으로 인해 붉은색 또는 포도주색의 얼룩 같은 것이 나타나는 증상, 선천성으로 푸른 정맥이 돌출하는 정맥류 또는 혈전, 혈전정맥염 등이 나타난다. 또 환자 대부분이 화염상 모반이 있는 팔이나 다리 등 신체 부분에 과다성장이나 과소성장이 나타나 신체 비대칭이 일어나는 특징을 지닌다. 이 3개의 증상 중 2개 증상이 나타나면 KT증후군으로 진단받게 된다.
환자들은 각기 다른 혈관 관련 질환으로 진단 받았으나 환자들에게서 공통적인 유전자 변이 ‘PIK3CA’가 발견되면서 이들을 통틀어 ‘PIK3CA 연관 과성장 스펙트럼’인 PROS로 지칭되고 있다.
현재 PROS라는 진단을 받는 질환으로는 KT증후군을 비롯해 거대뇌증 동반 모세혈관 이상(M-CM/MCAP), 클로브스(CLOVES) 증후군, 팍스웨버 증후군 등이 있다.
저희 아이는 KT 증후군 외에도 정맥혈관이 많거나 커서 생기는 각종 증상과 림프관의 문제로 인한 림프부종을 동반하고 있다.
-아이의 KT 증후군 진단은 언제 받으셨나요?
저는 아이를 미국 유학 중(2012년)이었던 임신 20주 초음파에서 발견했다. 의료진이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다행히 출산 병원에 KT증후군을 잘 알고 있는 의사로부터 KT증후군을 진단 받았고, 그 의사의 도움으로 아동전문병원으로 옮겨져 혈관전문의와 피부과 전문의 등 치료에 필요한 각 과의 진료를 받으며 질환을 관리해 왔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2.5배 컸고, 오른쪽 발등이 거북이 등처럼 볼록 올라온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허리부터 발끝까지 군데군데 ‘포트와인 스테인’이라고 불리는 화염상 모반이 있고, 현재도 양쪽 다리 부피가 2.5배 차이가 난다. 다리 길이 역시 4cm정도 차이가 나고 발의 크기도 완전히 달라 기성신발을 신을 수 없어 특수 맞춤 신발을 신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질환에 대해 알아가는 단계를 지속적으로 밟아가고 있고, 현재는 성장기여서 키 성장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골단유합술을 계획하고 있다. 어릴 적 오른쪽 다리에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봉합했던 부위가 계속 터지고 출혈 문제도 있어 완쾌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다시는 할 수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 몸에 나타나는 이 모든 증상들은 유전자 변이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치료제를 맞아야만 증상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다. 현재까지는 대증치료로 질환을 관리하고 있는 정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PROS라는 질환은 다양한 증상을 동반하고 있는데, 자녀분의 학교생활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저희 아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재택학습)을 하고 있다. 다만 PROS는 과성장으로 인한 외모의 차이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사회적 차별에 상시 노출된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 긴 바지를 입어도 오른쪽 신발이 눈에 띄게 크기 때문에 시선을 받는 게 일상이고, 반바지를 입으면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경우가 잦다. 학령기 아이들의 경우 이런 이유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하지정맥류와 만성 통증, 이유없는 봉와직염(세균감염증)을 경험하기 때문에 잦은 하체부위 시술과 갑작스러운 고열, 극심한 통증을 겪는 일이 잦고, 증상에 따라 그때그때 대처하는 수준의 처치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표님은 지난 6월 환자단체의 의료 정상화 기자간담회에서 임상참여를 위한 진단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의료 정책과 관련해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치료목적 사용승인과 치료제 옵션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 비조이스(성분 알펠리십)라는 치료제에 대한 치료목적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 유전자 진단을 받아야 했었다. 그런데 의료 파업이 시작되며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유전자 검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비조이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전자검사인 NGS를 특정 패널로 돌려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아 상급병원 중에서도 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해당 검진(PIK3CA 유전자 변이검사)가 전국적으로 실시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제는 비조이스라는 약물이다. 지난 2022년 FDA로부터 승인을 받아 환자들에게 투여될 수 있지만 현재 국내 도입은 불투명한 상태다. 이 약은 유방암치료제인 피크레이(성분 알펠리십)로 개발됐지만 프랑스의 한 의사가 KT증후군 환자에게 사용해 효과를 보면서 희귀질환인 KT치료제로 승인 받았다.
문제는 비조이스가 고가의 약제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판되는 약가는 28일 분에 3만 4000만불 수준(한화 4455만원)으로, 국내 들어오더라도 보험등재가 빠르게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사실 정책지원에 대해 할 말은 더 많다. 정부는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전국적으로 지정했다고 하지만 의료현장에서 만나는 현실의 벽은 높다. 환자가 권역별 희귀질환센터를 찾아가도 의사로부터 “서울에 큰 병원을 가라”는 말을 듣는다. 어떤 병원을 가야하는 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환자가 알아서 의사를 찾아 서울로 가야 하는 구조다. 부디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지방에 있는 환자들이 사는 곳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희귀질환 전문기관의 내실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환자들이 치료를 하면서 겪는 불편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산정특례대상에 포함돼 있지만 정맥류 시술이 비급여라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하지정맥류의 경우 전문병원을 찾게 되는데 수백만원이 든다. 환자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게 지원이 필요하고, 환자들 중 화염상모반이 얼굴이나 팔 등 상체에 있는 경우 미용시술로 분류돼 6회 이후로는 급여 지원이 안된다. 환자들을 위해 급여 적용을 확대해 주길 바라고 있다.
특수신발에 대한 지원도 짚고 싶다. 장애기준 충족을 하지 못해 대부분 하체에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은 특수신발을 자비로 부담해 사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한국PROS환자단체의 활동 시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도 함께 말씀해 주시지요.
유학시절 낳은 아이가 진단을 받은 케이스라 미국의 환자단체에 해당하는 서포트그룹을 알게 됐다. 이후 회원들과 교류하며 “치료법이 없는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서 잘 살지 못하는 건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한국에서 관련 환우회가 있는지 확인해 봤지만 없어서 직접 환우회 카페를 2014년 11월에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연관된 질환을 가진 환우회에 KT증후군을 소개하며 카페를 알렸고, 2019년 6월에 귀국하면서 그 해 11월 오프라인 모임을 처음 가졌다. ‘PROS환자단체’라는 이름으로 비영리 임의단체로 등록해 활동 중에 있다..
-환자단체 운영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진단명이 다양하고, 같은 진단명을 받아도 증상이 개인별로 각기 달라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분들이 계셔서 활성화에 기복이 있는 편이다.
지금 개인적인 고민으로는 회원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두루 인지하고 그런 문제들이 점차 해소되도록 활동해야 하는데, 치료제 이슈에 집중하면 치료제 복용 대상자가 못 되는 회원이 소외될 것 같고, 다른 이슈에 집중하면 치료제에 기대를 한 회원들이 소외될 수 있어 고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PROS에 10개 이상의 진단명이 포함돼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고민인 것 같다. 현재 우리 단체가 최소한의 의학정보를 알아야 하는 진단명이 3~4개 수준이고, 유전자 변이에 따라 다른 진단을 받은 회원들도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조화롭게 정보를 주면서 이끌어 가는 것이 최대 난관이자 숙제다. 어쩔 수 없이 대표로 느끼는 책임감과 동시에 부담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환자 지원이나 정책에 목소리를 내고 계시는데, 체감하는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회원들이 기사를 보면서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느낀다. 기본적으로 회원들이 양육자이다 보니 자녀가 진단 받은 이후 활동을 활발히 하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면 활동이 뜸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때문에 상시적으로 소통할 필요성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환우회 대표 활동을 하며 직장생활을 병행해 왔는데 올해부터 직장도 그만두고 환우단체 대표라는, 본격적인 활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전달해 사회적인 인식을 변화시키고, 치료 환경도 개선되게 더 노력해 볼 생각이다.
-한국PROS환자단체를 운영하시면서 앞으로 진행하고 하시는 사업이 있다면?
가족캠프를 열어 회원들이 서로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려 한다. 질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의료진을 초청해 강연도 듣고, 미국에서 열리는 PROS환자단체 컨퍼런스 처럼 질환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적 이슈를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의 개인적인 목표는 뭘까요?
처음 카페를 만들고 카페 이름을 ‘함께 걸어요 KT’라고 지은 이유가 있다. 이 질환은 여러 가지로 외로운 질환이다. 국문 의학자료도 별로 없고, 이 병을 잘 아는 의료진도 별로 없고, 환자 수도 10만 명 중 하나 혹은 100만명 중 14명 뿐이다. 같은 진단명을 받은 사람과 내 상태가 똑같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외롭다. 하지만 또 분명한 것은 이 외로움을 겪는 다른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다는 거다. 그래서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함께 하자는 뜻으로 지었다.
더군다나 나는 내 아이를 낳고서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이 KT증후군으로 인해 최악의 경우 다리 절단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리절단술을 한 KT 환자들을 미국 서포트 그룹에서 사진으로, 영상으로, 또 실물로 만나보기도 했다. 우리 중 그런 사람이 혹시라도 생긴다면, 그 사람과 꼭 함께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걷는다는 행위가 꼭 두 발을 이용한 발걸음일 필요는 없다. 한 발로든, 목발을 짚든, 휠체어를 타든, 누군가 함께 걸을 이가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새로 이 진단명을 받은 사람이 우리를 찾아 들어왔을 때, 우울하거나 슬픔에 압도되기보다는 반가움과 희망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진단명을 갖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고 “아, 이거 대단히 어려운 병 아니구나”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우리 아이의 일상을 그대로 내보이는 글을 종종 올리는 이유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걷는 사람들을 하나 둘 모아, 앞으로 올 다른 KT, 다른 PROS 아이들에게 태어난 모습 그대로 살아도 괜찮은 세상, 꼭 약을 먹고 모반을 지우고 다리 부피를 줄이지 않아도 살 만한 세상, 아플 때 필요한 치료 받고 나머지 시간은 충만하게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게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