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특별한, 주요 관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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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특별한, 주요 관리 대상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4.08.08 0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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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독자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유진이는 진심으로 밝고 쾌활하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말하자면 ‘극E’(외형적 성향)여서 지나가는 길에 처음 마주하는 친구라도 이미 알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반가움을 표현한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마주하는 동네 어르신(거의 모두)에게 기본 좋은 아침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청소차 아저씨들에게도 활짝 웃는 낯으로 반가움을 표현한다.

오늘은 등원 길에 만난 처음 보는 아이에게 폴짝폴짝 뛰어가 인사를 하며 반갑다는 표현을 하자 상대 부모가 “아는 친구야?”라고 자신의 아이에게 묻기까지 할 정도이니 말이다. 아이는 유진이가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안녕”하며 인사를 해주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일상이 되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E에서 I로 노선을 변경한 엄마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혹스럽다. 아이는 밝고 쾌활한 성격을 타고 났지만 그 성격으로 인해 상대의 상태를 살펴보는 세심함은 부족하다. 때문에 조심스럽고 소극적이고, 섬세한, 또는 예민한 성격의 아이들을 만나면 난감한 상황이 일어난다.

어느 날은 놀이터에서 놀다 예쁜 공주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유진이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시큰둥한 얼굴로 공원 입구에 들어선 아이는 유진이가 인사하는 것을 슬쩍 보고는 무시하며 지나쳤다. 뒤에 따라 오던 아이 엄마 낯빛을 살펴보니 역시 어두웠다. 나는 재빨리 유진이에게 다가가 주의를 주려했지만 상황은 벌어지고야 말았다.

일어나 몇 걸음을 떼지도 못한 순간 유진이는 아이의 반짝이는 드레스 비즈를 만졌고, 기분이 좋지 않은 상대 아이는 자신의 옷을 만지지 말라고 고래고래 악을 써대고 울기 시작했다. 유진이는 아이의 울음에 놀랐는지 한 발 뒤로 물러서던 차에 상대 아이 엄마가 둘을 떼어 놓으려는 손길에 의해 뒤로 넘어지게 됐다.

유진이는 엄마를 닮아 날렵한 운동신경을 가진 덕에 뒤로 넘어지면서도 고개를 앞으로 당겨서 머리가 땅에 닿진 않았다. 넘어지는 순간이 엄마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는데, 아이는 뒤로 넘어지면서도 두 팔을 넓게 벌려 지면에 닿는 신체의 충격을 최소화했다. 역시 내 딸이다.

두 아이의 엄마는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각자의 아이를 안고 다독이기 시작했다. 나는 유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혼이 쏙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그저 “유진이 많이 놀랐지”하며 다독여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진이를 진정시키고 눈을 들어보니 상대 아이와 엄마는 이미 공원을 떠난 뒤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같은 상황이 하루 일과 대부분을 보내는 어린이집에서도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엄마의 통제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사고가 나도 환기가 되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소수의 선생님의 지도 아래 있는 환경에서는 유진이의 감정선이 통제불가능한 상태가 자주 일어날 것이라는 염려가 있었다. 게다가 유진이는 유독 어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목말라 하는 아이라서 빈도는 높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혹여나 하는 마음을 확인시켜준 것은 첫 번째 학부모 상담 때였다. 새롭게 6살 반을 맡은 선생님은 엄마와 연령대가 비슷해 보였다. 경험이 많은 만큼 조금은 특별한(유별나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진 않다) 유진을 잘 돌봐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대는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짧은 '15분' 학부모 상담 시간 동안 선생님은 ‘많은 아이들을 경험해 유진이와 같은 아이를 잘 알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예민하고, 통제가 되지 않으며, 자주 울며, 감정기복이 심하고, 고집이 세다’는 말로 아이를 관리하는데 있어 애로사항이 많다는, 토로에 가까운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호소에 가까운 선생님의 토로에 ‘학부모 상담’이 ‘교사 상담’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유진이의 원생활과 교우 관계, 어떤 놀이를 잘하고,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를 묻고 싶었던 마음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선생님의 지도사항을 머리에 일단 담아두는데 집중했다. 상담 시간이 너무 짧아 나는  전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도 못해 상담 이후 일정한 시간을 내어 만나기를 청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대신 ‘언제든지 편하게 전화해 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의 근무시간은 곧 선생님의 근무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그의 업무 시간에 전화를 걸어 내 아이만을 위해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반 아이들 모두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업무 중에 가급적 통화를 자제해야 해야 하는 것을 그도, 나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나의 보석

유진이는 학기 초 5살 반에서 6살 반으로 함께 올라온 친한 친구들과 하루를 어떻게 즐겁게 보냈는지 엄마에게 매일 조잘대며 전달해 주었다. 간간히 ‘000이 날 때렸어’라든지 ‘선생님은 항상 친절해’라든지, ‘000가 자꾸 나랑만 놀자고 해서 싫어’라는 말로 원에서의 인간관계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담임선생님의 지도편달 전화가 연거푸 3차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가 온 시기는 4월 말과 5월 중순, 6월 말 이렇게 세 번이다. 선생님의 요구 사항을 잘 들으며 유진이를 지도편달 하던 엄마는 세 번째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오기 전 유진이로부터 ‘000가 나 자꾸 때려’, ‘000랑 000가 나 싫어해’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에서 잔잔한 일렁임이 일었다. 한 친구가 유진이가 다가갈 때 마다 때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5살 때)같은 반이었던 친구들하곤 (사이가)좋지만 다른 반 이었던 친구들은 나를 싫어해”라고 아이들과 관계를 설명했다.

그런 와중에 걸려온 세 번째 통화에서 선생님은 오히려 유진이가 다른 친구를 때린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담임선생님 자신이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반 아이가 유진이한테 맞는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를 향해 때리려 손을 드는 모습을 자신이 목격했으며, 유진이 역시 때렸음을 시인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원장선생님께 불려가 훈계를 들었음에도 교정이 되지 않아 가정에서 주의를 달라는 요청이 통화의 요지였다.

나는 ‘아이의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꾸짖어 달라“는 말을 전하면서도 ”내 아이도 맞고 있다“는 말은 전하지 못했다. 대신 선생님의 말씀은 그런데 유진이의 말은 이러니 그 간격의 차이가 상당해 좀 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날 유진이를 데리고 공원 산책을 하며 엄마는 아이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자신이 때린 친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계속 그 친구하고만 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다른 친구와 놀고 있는데도 와서 둘이 놀자고 하면서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한번은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으니 싫은 맘에 친구를 때리게 됐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 친구가 울거나 속상해 선생님께 ‘때린 사실’을 알린 뒤 다른 공간으로 가니, 유진이는 친구와 빨리 거리를 두기 위해 다가오면 때리는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 것이었다.

'덥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2024년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습한 여름을 유진이와 아빠는 둘이 함께라서 즐겁게 보내고 있다. 훌쩍 커버린 유진이의 키는 어느새 아빠의 허리춤을 지나고 있다.
'덥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2024년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습한 여름을 유진이와 아빠는 둘이 함께라서 즐겁게 보내고 있다. 훌쩍 커버린 유진이의 키는 어느새 아빠의 허리춤을 지나고 있다.

물론 담임선생님은 그 둘 사이의 있었던 일을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명확히는 유진이가 때린 결과값만 인지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아이’의 말은 전달되지만, 유진이처럼 대부분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이의 입장은 전달되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는 일단 친구를 좋아하는 유진이가 ‘단 둘이 놀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때렸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에도 친구나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다음 번에 그 친구가 단둘이 놀자고 요구할 때 유진이가 싫으면 명확하게 ‘싫다’는 표현으로 거부할 권리 역시 있음을 알려줬다.

고개를 숙이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던 유진이는 크게 혼이 날 줄 알았는데 설명으로 엄마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들고는 “엄마 나 혼날까봐 진짜 걱정했었어”라며 방긋 웃었다.

이 이후로 더 큰 사건(?)도 있었다. 엄마는 원장선생님과 통화를 해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됐고, 그 과정에서 어린이집이 다수의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잘 짜여진 관리체계를 이어가는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이이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루는가’가 원활한 업무의 우선순위가 돼 있는 체계. 그 안에서 쾌활하고 명랑하지만 호기심 많고, 관심에 목말라 하며, 엉뚱한데서 울음이 터지는 유진이는 모난 돌처럼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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