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어린 시절,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공포의 대상은 바로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이었다. 구미호를 비롯해 "내 다리 내놔"를 외치며 외발로 사람들을 쫓아다니던 남자 귀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 매번 그 마을 새로온 사또들을 찾아 한을 풀기 원했던 여자 귀신, 떡을 급하게 먹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데 무덤에 묻혀서 혼으로 시어머니에게 찾아가 자신의 가락지를 내놓으라며 다그치던 며느리 혼령까지...
늘 잊히지 않고 내 머리 속을 떠돌던 그 귀신들은 한참 자랄 나의 유년기(7~8살 때)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아 밤잠을 설치게 했다.
잠자리에 들 때면 화면 속에 비치던 이들이 너무 뚜렷하고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라 이불을 뒤집어 써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게 매번 잠이 드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 엄마가 곁에 있어도 귀신의 존재는 무섭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울며 잠들던 날들이 많았다.
당시 엄마에게 귀신이 나타날까 무섭다 말하면 엄마는 단호하게 "귀신같은 건 없다"며 잠을 자라고 토닥여 주곤 했지만 불이 꺼진 방안의 어둠과 고요함은 오히려 머릿속 그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해 나의 유년시절 밤들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또 하필 전설의 고향이 방영하던 날은 화요일 저녁이었는데, 이 날은 엄마와 아빠 모두 일을 늦게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라 나를 비롯해 언니와 오빠 이렇게 세 아이는 호기심에 틀었던 TV를 무서워 끄지도 못한 채 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겨붙어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를 공포체험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여름철이면 찾아오는 전설의 고향을 우리 세남매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이불을 방어막 삼아 매번 끈질기게 시청(이것은 순전히 첫째인 언니의 주도로 실행)했다. 아쉽게도 나의 유년시절 전설의 고향 귀신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어서도 내 머리 속에 남아 밤을 두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니, 나에게는 하나의 상처처럼 남은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유진이 역시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좀비와 강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두려움에 '잠이 오지 않는 밤'과 이들에게 '쫓기는 꿈'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엄마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두려움과 어둠에 거의 사투를 벌이듯 잠드는데 애를 먹고 있다.
유진 이를 보면서 엄마는 자신의 유년기를 곱씹는다. 어둠과 두려운 존재의 콜라보가 얼마나 아이에게 큰 공포의 대상인지 잘 알고 있기에 될 수 있으면 긍정적으로 아이의 생각을 돌려보려 한다.
이전에도 좀비와 강시 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쓴 글이 있다. 아이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던 시기에 불행하게도 아이는 새로운 미디어(어린이집 TV, 버스와 전광판 광고 등)을 통해 잠깐씩 스치듯 좀비(좀비버스, 기생수)들의 존재를 마주하게 됐고, 이들에 대한 두려움은 또 다시 현재 진행형이 되어 버렸다.
유년시절, 언니의 주도와 우리의 호기심이 뒤섞여 보았던 '귀신'을 지금의 유진이는 걸러지지 않은 미디어를 통해 '좀비'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어릴 적 두려움에 떨었던 그 존재를 가볍게 넘길 기회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그 무서운 존재를 어찌할 도리가 없어 두려움에 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내 아이에게는 이러한 두려움과 어둠에 대한 공포를 사라지게 하려 신경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좀비는 사람들이 흥미를 위해 만들어 낸 존재라는 것(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좀비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좀비들은 사라지고 사람들만 남게 됐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좀비는 우리집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우리집 현관문은 단단해서 전사도 뚫을 수 없다고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좀비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살이 썩어 나가기 때문에 사람을 쫓아 오지도, 힘을 쓰지도 못하고 벨벨 기어다니다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강시 역시 중국의 귀신이라 우리가 사는 한국까지 올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강시라 한국까지 콩콩 뛰어서 오려면 유진이가 다 크고 어린이 되면 도착할 것이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의 대상들은 결국 유진이 머릿속에서만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이것들 보다 훨씬 좋은 것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며 천사나 공주, 티니핑, 키즈카페 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소재를 골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에도 아이는 여전히 이 두려운 존재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 역시 아이가 짊어지고 갈 부분이라 엄마는 아이가 가는 길이 힘들지 않게 조언을 할 뿐이다. 이렇게 유진이는 두려움과 공포와 싸우며 짱구스럽고 똥꼬발랄한 7살이 시작됐고, 엄마 역시 ‘무서울 것이 없는 갱년기’를 맞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