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업 전 약사공론 기자, 119문화상 동화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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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업 전 약사공론 기자, 119문화상 동화부문 수상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0.12.14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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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업(51) 전 약사공론 기자가 '2020년 제2회 119문화상 문학분야 동화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한 때 작가를 꿈꾸며 치열하게, 또 아프게 '문청(文靑)' 시절을 보냈던 홍 전 기자는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아빠에서 우연히 동화를 쓰는 '작가'가 됐다.

물론 공모전에서 한 편의 작품이 당선된 게 전부이지만 그의 길은 이제 시작이다.

홍 전 기자는 대학시절 영문학을 전공했고, 데일리팜과 약사공론에서 전문언론 기자로 활동했다.  뉴스더보이스는 짧지만 교훈이 있는 홍 전 기자의 공모작 전문을 독자들과 함께 읽는다. 

(제2회 119문화상 문학분야(동화) 은상 수상작)

캠핑장에 간 몰티즈와 여우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내닫고 있었다. 어느새 숲과 산은 연두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곰 아빠와 돼지 엄마, 여덟 살 몰티즈와 일곱 살 여우. 이렇게 네 가족은 야외로 캠핑을 떠났다. 코로나19로 바깥공기를 마신 지 한참 지났다. 그동안 형과 동생은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피곤한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캠핑장까지 마차를 몰았다. 몰티즈와 여우는 들뜬 기분이었다. 캠핑장에서 뛰어 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났다.

캠핑장은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다. 깨끗한 냇물이 캠핑장을 끼고 흘렀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텐트를 치는 것이다. 넓은 사이트에 텐트 뼈대만 세워져 있었다. 햇빛을 가릴 지붕과 잠자리는 캠퍼들이 직접 준비해야 한다. 대개 침대는 폭신한 마른 풀잎을 이용하고 지붕은 참나무와 떡갈나무 따위의 활엽수를 엮어 만든다.

텐트가 완성되자 몰티즈와 여우는 캠핑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숲 체험을 했다. 소나무를 꼬물꼬물 기어오르는 송충이를 보기도 했고 매미가 되기 위해 땅을 뚫고 나온 굼벵이와 마주치기도 했다. 상수리나무 근처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물고 빠르게 나무를 오르는 다람쥐와 인사를 나눴다.

“도토리 좀 주워 가도 될까?”

몰티즈와 여우가 물었다.

“도토리는 우리 먹이야. 너무 많이 주워 가면 안 돼.”

나뭇가지에 앉아 도토리의 껍질을 벗기면서 다람쥐가 대답했다. 이미 다람쥐의 볼주머니에는 도토리가 가득했다.

“그래, 몇 개만 주워 갈게.”

몰티즈와 여우는 킁킁, 냄새를 맡으며 도토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래 저기 있군. 몰티즈는 냉큼 도토리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 옆에 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여우는 청설모가 여기저기 끊어놓은 상수리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거기에 작은 도토리가 잔뜩 매달렸다.

“형아, 여기 모자 쓴 도토리 되게 많아.”

“그만 가자. 엄마가 기다릴 거야.”

여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둥이를 계속 흙바닥에 바투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위잉,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야, 아야.”

여우가 코를 움켜쥐고 나동그라졌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손과 발로 얼굴 주변을 허우적거렸다.

“빨리 냇물 속으로 뛰어들어!”

몰티즈는 여우를 향해 소리쳤다. 여우는 땅벌에 코가 쏘였다. 땅 속에 집이 있다고 해서 땅벌이다. 한 번에 여러 마리가 공격하는 특성이 있다. 크기는 작지만 쏘이면 무지 아프다. 여우는 퉁퉁 부은 코를 차가운 냇물에 담그면서 눈물과 콧물을 한 움큼 쏟아냈다. 몰티즈는 속으로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는 동생이었다. 게다가 동생이 실수를 하면 괜히 형까지 함께 혼나곤 했다. 이번 참에 그런 버릇을 고쳤으면 싶었다.

“넌 형이 돼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도 제대로 못 보니?”

캠핑 의자에서 쉬고 있던 엄마가 동생의 얼굴을 보고서는 몰티즈를 꾸짖었다.

“그게 아니고, 내가 하지 말랬는데 계속 고집을 피웠다니깐.”

몰티즈가 조목조목 설명했다. 조금은 억울했다. 옆에 서 있던 아빠가 몰티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몰티즈와 여우는 찐 감자와 고구마 맛탕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낮잠이 들었다.

마차를 타고 오긴 했지만 고단했다. 한숨 자고 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얘들아, 저녁 먹어야지. 캠핑은 지금부터라고.”

아빠는 황토로 만들어진 화롯대에 불을 피웠다. 다른 텐트에서는 이미 불을 지펴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캠핑장 주변에 낮게 깔렸다.

아빠가 토치로 불을 켜자 갈색 솔잎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빠르게 타들어 갔다. 곧 잔가지와 장작에도 불이 붙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연어구이와 벌꿀에 절인 소시지야. 맛있겠지?”

가족들은 엄마가 준비한 요리에다 후식으로 레모네이드까지 마셨다. 나른해진 가족들은 장작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그 냄새가 초여름 밤의 운치를 더했다. 캄캄한 하늘엔 별이 수없이 박혔다. 어디선가 별똥별 한 개가 사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장작불은 이런 밤에 피워야 제맛이야. 정말 근사하지? 하늘의 별과 불똥이 구별이 안 돼.”

아빠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 개의 장작을 한꺼번에 올렸더니 불똥이 더 많이 생겼다. 불똥이 바람을 따라 날아가다 흩어졌다. 마치 반딧불이 수십 마리가 서로 꽁무니를 부비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몰티즈와 여우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은 피우는 것보다 잘 다루는 게 중요해. 알았지?”

아빠는 장작불이 사그라지자 부지깽이와 집게를 몰티즈에게 맡겼다. 그러고는 엄마와 함께 설거지를 하러 갔다. 어른을 기다리기 지루해진 몰티즈와 여우는 자갈이 깔린 캠핑장 공터에서 쥐불놀이를 했다. 화롯대에서 빨간 불씨를 꺼내 구멍이 숭숭 뚫린 깡통에 담았다. 여기에 철사를 매달아 빙빙 돌렸다. 불씨가 담긴 깡통은 붕붕, 소리를 내며 깜깜한 허공에서 불꽃 원을 그렸다. 맨 마지막에는 하늘 높이 깡통을 던졌다. 깡통 속 불씨가 밤하늘에 흩날려 불꽃축제를 하는 것만 같았다.

“우와, 멋있다.”

몰티즈와 여우가 짧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쥐불놀이를 마치고 아빠와 함께 화롯대의 잔불을 정리했다. 곧이어 푹신한 침대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이 들었다.

“불이야!”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동물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동물 가족들이 공터에 모여 웅성거렸다. 그들 뒤편으로 시뻘건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풀잎 텐트 한 동에서 불이 났는데, 그것이 다른 텐트로 도미노처럼 옮겨 붙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몰티즈와 여우는 속이 철렁했다. ‘혹 쥐불놀이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코끼리 가족이 시냇물을 퍼 날라 불을 끄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캠핑장 관리자인 토끼도 소화기로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손쓰기에는 너무 늦었다. 불길은 캠핑장뿐 아니라 인접한 산속에서도 피어올랐다. 여기저기서 동물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 애기가 있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거북이 가족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걸음이 느린 거북이 부부는 불길을 가까스로 벗어났는데, 아기 거북이만 텐트 안에 남았다고 했다. 아무도 그곳으로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며 새매 부대가 나타났다. 발톱에는 육각수가 가득 찬 물통이 들려 있었다. 날갯짓을 하면서 차례대로 물통을 거북이 가족이 머물던 텐트 위에 쏟아 부었다. 불길이 잦아들자 맨 마지막 새매가 새끼 거북이를 두 발로 사뿐히 들어올렸다. 동물 가족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어휴 다행이야, 다행.”

“정말 감사합니다.”

새매 부대는 이제 캠핑장의 불을 진압하고 산으로 번진 불길을 잡는 일이 남았다. 다만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이 정도 강풍이면 불길은 삽시간에 산을 태우고 반대편 동물마을까지 번질 것이다. 이미 그곳에도 적색경보가 발령된 상황이었다.

새매 부대원들은 시냇가에서 몸을 적시고 육각수 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무거운 육각수 통을 들고 불길 속으로 쉴 새 없이 날아갔다. 바람이 세고 연기는 자욱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길을 피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두더지, 너구리, 수달은 냇가에 모여 새매 부대의 물 보충 작업을 도와주었다. 몰티즈와 여우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부엉이와 크낙새, 비둘기 등 날개를 가진 동물은 직접 육각수 통을 진압현장에 공수하기도 했다. 나머지 동물은 부상자와 노약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곰 아빠와 돼지 엄마는 그 대열에 동참했다.

불길은 이튿날 새벽녘에야 잡혔다. 산 너머 마을의 동물들은 다른 곳으로 대피했다. 화마가 민가까지 집어삼켰다.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동물도 있었다. 고령의 염소 할아버지와 그를 돌보던 할머니였다.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귀가 어둡고 걸음이 느린 때문이었다. 암탉 가족은 어린 병아리 넷을 잃고 큰 슬픔에 빠졌다. 하늘도 날지 못하고 걸음도 종종걸음이라 불가항력이었다. 그나마 외국에서 일하러 온 기러기 부부가 병아리 셋을 구해준 게 천만다행이었다.

캠핑장에서는 젊은 사슴 한 쌍이 불길에 휩싸인 텐트에서 뒤늦게 빠져나오다가 2도 화상을 입었다. 부딪히고 넘어져 찰과상과 발목부상을 입은 동물도 꽤 많았다.

화재 진압 도중 새매 부대원의 피해도 발생했다. 한 대원이 산불 연기에 질식해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어둠이 짙고 불씨가 남아 있어 수색작업이 여의치 않았다. 그때 밤눈이 밝고 후각이 뛰어난 몰티즈와 여우가 수색작업에 자원했다.

“우리가 다녀올게요. 하늘에선 숲속이 보이지 않지만 냄새를 쫓아가면 찾을 수 있어요.”

아빠와 엄마는 내심 걱정이 앞섰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그게 최선이었다. 몰티즈와 여우는 새카맣게 타버린 숲에서 추락한 부대원을 한참이 지나서야 찾아냈다. 그는 심한 골절상과 화상을 입었다. 여우가 오우우우, 하고 큰 울음소리로 위치를 알렸다. 새매 부대원들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끝내 그 대원의 생명을 건지진 못했다.

진압작전이 완료된 뒤에도 새매 부대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재난으로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온 데다 대원까지 목숨을 잃었다. 남겨진 대원들도 불길에 깃털이 그을리고 날갯죽지에 심한 생채기가 났다.

“이젠 안심해도 됩니다. 05시 30분 현재 불길은 완전히 진압됐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동물은 병원으로, 그렇지 않은 동물은 안전하게 귀가하시면 됩니다.”

새매 부대장은 캠핑장 공터에 모여 있는 동물들에게 말했다. 동물들의 얼굴과 몸에도 검댕이 잔뜩 묻었다.

“여러분의 도움이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어린 몰티즈와 여우 형제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새매 부대는 이번 참사의 원인이 자연발화로 추정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캠핑장 내 불씨 관리가 허술했던 게 아닐까 하고 의심을 품었다. 조사 결과는 달랐다. 산에서 먼저 발화한 불씨가 캠핑장으로 날아왔다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형태의 산불이 나곤 하는데, 이번에는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피해를 더 키웠다고 분석했다.

수색작전에 투입됐던 몰티즈는 하얀 털이 검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코가 퉁퉁 부은 여우는 목이 쉬어버렸다. 이들 형제는 새매 부대로부터 화재원인을 듣고서야 한쪽 가슴을 쓸어내렸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 긴 하루였다. 앞으로 또 캠핑을 오더라도 불씨는 잘 관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빠와 엄마는 아이들을 살포시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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