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속한 신약 도입·정신과 협진 등 현실적 대안 마련됐으면"
"유방암이라고 다 같은 유방암이 아니예요. 진료실에서 삼중음성유방암을 진단 받고 나와 울고 있으면 다른 환자들이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삼중음성유방암만 아니면 되지." 이런 현실이 더 고통스러워요."
갑상선암과 함께 '착한 암'으로 불리는 유방암. 그러나 '삼중음성유방암'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재발과 전이가 잦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들이 바로 삼중음성유방암환자들이다. 치료 성적과 그 환경이 다른 암종에 비해 뒷받침 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국내에는 삼중음성유방암을 표적하는 신약이 급여권에 없다.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성분 펨브롤리주맙)가 항암화약요법과 병용으로 사용되고 있고, 올해 5월이 되어서야 트로델비(성분 사시투주맙고비테칸)가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까지 갈 길은 멀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에스트로겐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수용체(PR), 표피성장인자수용체2(HER2)가 없는 유방암을 말한다. 다시 말해 환자들은 유방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3개의 수용체를 가지지 못한(음성) 환자라는 의미다. 때문에 환자군도 다른 유방암에 비해 적다. 현재까지 알려진 비율은 15~20% 내외다. 특징은 또 있다. 대부분의 유방암이 고령층에서 발현되는데 비해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의 50세 미만 비율은 36.6%에 달한다.
여기에 다른 유방암에 비해 5년 이내 원격 재발과 사망 가능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불량한 예후를 보이는 암이기도 하다. 미국 암학회에 따르면 국소 발생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은 91%, 원격 전이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12%에 불과하다. 같은 1기 환자라도 무재발 생존기간이 다른 유형에 비해 더 빠르게 감소한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삼중음성유방암은 젊은 환자가 많아, 그 만큼 '젊은 여성'의 사망율 역시 높은 암으로 존재하고 있다. 뉴스더보이스는 국내에서 삼중음성유방암 환우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서로 의지하며 투병생활을 이어가는 단체인 '우리두리구슬하나'의 이두리 대표멘토를 만나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의 고민과 현재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이두리 대표멘토가 거주하는 경기도 이천 소재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반갑습니다. 먼저 단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두리구슬하나는 삼중음성유방암환우 및 경험자들로 구성된 삼중음성유방암환우단체입니다. 단체를 설립한 저는 삼중음성 4기이며 저를 포함해 삼중음성유방암 경험자이자 치료 중인 10여분의 임원분들이 함께 단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1552명이 가입해 있습니다. 네이버밴드에서 시작해 비영리민간단체로 거듭나며 규모가 커졌습니다. (웃음)
우리두리구슬하나는 유방암 전체를 아우르는 단체가 아니다보니 삼중음성유방암이라는 아형을 통해 친정 같은 공간, 더 끈끈하게 소통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친목활동 뿐 아니라 환우를 위한 심적·물적 지원과 사회적 제도 및 정책 참여를 통한 투병 환경 개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치료 과정을 공유하고 관련 서비스와 교육, 경제적 취약계층 물품 지원, 환우의 사회적 복귀를 돕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면서 투병 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두리구슬하나라는 이름이 독특한데요.
초기 모임을 만들었던 친구의 이름이 '구슬'이었고 저의 이름이 '두리'라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구슬이라는 친구는 유명을 달리해 최근 3주기를 보냈고 저는 아직까지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분이 만나신 배경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처음 삼중음성유방암 진단을 받고 달리 정보를 얻을 곳이 없었어요. 유방암 관련 카페를 들어가봐도 "왜 하필 삼중음성유방암이냐"라는 시각이 있어서 외로웠던 차에 구슬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됐습니다. 소외된 암이지만 우리라도 삼중음성환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정보도 줄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보자 의기투합해 '우리 둘'의 이름을 가지고 시작해 보자고 해서 만든 것이 '우리두리구슬하나'입니다.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 단기간에 친해졌고 모임까지 만들었지만 구슬이가 만난 지 10개월 만에 사망해 그 동안 저 혼자 이끌어오다 최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구성해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두리구슬하나'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으신지요.
지난 3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하지 못했고 온라인상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걷기챌린지 등 다양한 챌린지를 통해 소통했습니다.
올해 3월 28일에는 재난적의료비지원 개정이 되어 지원을 받는 방법 등을 회원에게 공유하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3개월 이후의 일정은 안 잡는데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지난 3월 3일 삼중음성유방암의날을 기념해 서울 의학세미나를 시작해 전국 투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의료 서비스 불균형 해소를 위한 지역 기반의 의료 서비스 혜택과 진료실안에서는 할 수 없었던 치료과정에 대한 Q&A 등을 담아 회원들에게 알리고 있죠.
오는 6월 10일에는 대구에서 진행하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 국가 재난적의료비지원 담당 부서와 대구경북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에서 지원해주셔서 암 치료 이후의 지원과 혜택 등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오늘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두리구슬하나가 바라보는 최대 현안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는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 중에서도 재발 고위험군 환자의 치료 환경 개선이 시급합니다. 재발 관리는 질병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시간을 연장합니다. 환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치료 옵션들이 제공돼 장기적인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환자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들이 적잖습니다. 오로지 치료적인 관점에서만 말씀드려도 장기치료 비용, 치료 예후, 신약 도입까지 너무 막막한 것이 현실입니다. 치료제 접근성은 이미 많은 언론이 말씀해 주시고 있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죽음과 싸워야 하는 입장인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말씀드려야 우리의 마음이 전해질까요.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더불어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 재발과 전이된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정신과 협진이 필요한데 이 부분 역시 치료현장에서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환자들의 몸과 마음이 더 다치지 않도록 치료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환자들 모두 표준치료(선 또는 후 항암수술, 방사선)를 받게 되고 이후 독성항암제나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독성항암제 부작용은 여성암 환자인 우리에게는 신체적 결함이 생김과 동시에 심적으로 많이 괴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다보니 여러 가지로 환우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치료중인 면역항암제 역시 단독요법이 아닌 독성항암제 병용이다보니 이 부분을 피해갈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저 같은 경우 말초신경병증이 심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또한 재발과 전이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큽니다.
-환자들이 치료과정에서 가장 불편을 호소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앞전에 말씀 드렸듯이 재발전이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죠. 그리고 치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뒤를 이을 것 같습니다. 일을 하면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젊은 사람들의 경우 경력단절을 가장 두려운 점으로 생각하죠. 아이를 가진 애기 엄마들은 육아에 전혀 손을 못 대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들은 대부분 치료가 끝난 후에도 다시 일상복귀나 직업복귀에 어려움을 가집니다. 저 같은 경우 4기이다보니 3개월 이후의 플랜은 잘 계획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해외여행도 한 달 내 계획해 다녀오기도 합니다. 사실 올해 진행하는 삼중음성유방암 의학세미나 전국투어는 제게 엄청난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1년 짜리 플랜을 짜버렸으니까요
-본인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계신 환자인데, 환자단체 운영하시면서 느끼는 어려움도 크시리라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현재 치료 중인 환자이고 주어진 역할이 많습니다. 단체의 대표이기 전에 4기 환자인 제 자신을 간과할 수 없다보니 어떤 프로그램 하나를 진행할 때 제 컨디션에 따라 늦어지거나 불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한 아이의 엄마이자 부인이자 동시에 딸이기도 하고 한 업체의 사장이기도 해서 각각의 역할에 힘은 들지만 내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체 운영에 있어서는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네요. 4기인 저도 이렇게 4년을 살아내고 있는데 다른 분들이 저를 보면서 "쟤도 사는데 내가 못살 이유가 없지"라고 위로받길 바랐던 마음이 컸습니다. 진단받은 환우분이 곧 죽을거처럼 힘들어하시다가 우리 단체 안에서 위로 받고 힘받고 어느새 치료가 끝나고 처음 진단받았을 때 위로해주시던 그 분들처럼 또 새로 진단 받은 환우들을 위로해주는 모습을 볼 때 너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정책이나 이런 부분은 제가 노력한다고 뜻대로 되지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환자들에게, 또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임원분들도 치료 중이신 환자이고 본업이 있으신 분들이라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때로는 회원이나 가까우신 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때 힘들지만 우리의 인생은 계속 되기에 저에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단체의 운영 방향이나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예전에는 암 그러면 유방암을 통칭해서 말했지만 저희는 많은 유방암 환자단체들 중 저희 질환(삼중음성)에 맞는 보다 개개인의 삶에 표적된 일을 할 예정입니다. 소수의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이 진단 시부터 겪는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해외 유방암 환자단체와의 협력을 통해서 암치료 및 암치료 이후의 삶에 동반자가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여성암의 특징이 치료가 끝나면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데, 치료를 끝내셔서 건강을 찾으신 분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함께하는 공간으로 단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마치 제로웨이스트처럼요. 현재의 우리보다 다음세대를 위해서요.
-대표님의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 딸이 지금보다 손이 덜 가고, 저와 이별을 한다고 해도 조금 덜 아플 때. 그리고 우리부모님이 먼저 떠나신 다음까지만 제가 살아내길 욕심내 봅니다. 이건 평생에 목표이자 소원이지만요. (한숨)사실 목표는 없습니다. 제가 인터뷰나 강의패널로 나가면 원하는 것을 말할 때 '벤츠'나 '샤넬백'이라고 말하는데요. 사실 가장 가치있는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오늘 인터뷰에서 여러 번 울컥했습니다. 대표님의 건강관리 비결도 그러고 보니 궁금한데요.
저는 환자들에게 그리고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결국 암은 다 같은 암일 뿐이라고. 착한 암 나쁜암이 어딨나요.모든 지 최선을 다해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환우분들이 긍정적으로 맘을 먹고 생활도 긍정적으로 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3개월 이후의 일정은 잡고 있지 않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바로바로 하면서 살고 있어요. 먹는 것도 특별히 가리지 않고 제가 먹고 싶은 것, 제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살아가면 또 다른 내일이 온다고 생각하며 오늘을 보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이유를 제 주치의 선생님이 "잘 먹어서 그렇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재발됐을 때 입원해야 하는데 하루 늦춰달라고 했어요. 먹고 싶은 거 먹고 입원하려고요.(웃음) 성격이 불필요한 고민을 오래하지 않는 편이입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까요. 치료 받고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제 치료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의 덧
이두리 대표멘토는 삼중음성유방암 세번째 전이가 흉강경으로 와서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에도 '잘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이 치료과정을 이겨낸 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그의 주치의가 그의 생명 한계선을 정하는 '선고'를 내리지 않았기에 4년이라는 투병생활을 잘 이어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환자들에게 '긍정의 힘'이 이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인터뷰 뒷이야기로 이두리 대표의 사례를 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