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베니’를 통해 전하는 존재의 의미 ”당신은 소중합니다“
상태바
토끼 ‘베니’를 통해 전하는 존재의 의미 ”당신은 소중합니다“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4.08.12 0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통의 어려움이 ‘베니’의 탄생 이유…“하루하루 최선 다해”
“희귀난치질환 앓는 당신, 사랑하는 존재에 행복임을 잊지 말아야“
어셔신드롬·망막색조변성증 앓지만 ‘베니’ 그리며 보람 느껴

귀엽고 통통튀는 매력의 토끼 캐릭터 ‘베니’를 그린 구경선 작가는 어셔신드롬과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희귀질환자다. 필명 ‘구작가’로 불리는 그는 들리지 않는 귀와 점차 잃어가는 시력에도 베니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구작가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대국민 희귀난치성 질환 인식개선 캠페인'의 인스타툰 중 하나. 구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담겨진 툰.
구작가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대국민 희귀난치성 질환 인식개선 캠페인'의 인스타툰 중 하나. 구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담겨진 툰.

최근에는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we are kord)와 ‘대국민 희귀난치성 질환 인식개선 캠페인’ 일환으로 인스타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이땅의 희귀난치질환 환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도 일조하고 있다.

희귀난치질환 환자의 삶이 그저 슬프고 고단한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이자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존재임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많이 흘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희귀난치질환자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전할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준 그를 만나 베니와 인간 ‘구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작가명 ‘구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구경선이라고 합니다. 토끼 캐릭터 ‘베니’로 다양하게 그림을 그리고, 에세이로 글을 쓰고 제 이야기로 강연을 종종 다니곤 합니다. 그저 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어셔신드롬을 앓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환에 대한 소개와 본인의 경험을 말씀해 주세요.

평소 어셔신드롬은 망막색소변성증과 청각장애가 합쳐진 병이라고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지만, 망막색소변성증도 어셔신드롬도 워낙 유형이 다양해서 자세한 설명은 힘들 것 같아요.

망막색소변성증은 대부분 알려진 증상으로는 ‘시야가 좁아지면서 실명하는 병’이라고 하죠. 어셔신드롬은 먼저 청력을 손실하고 시야가 나중에 좁아지기도 하고 먼저 실명하고 청력을 천천히 잃기도 해요.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 중에 ‘야맹증’이 있는데요. 저는 어릴 때 야맹증이 점점 심해졌어요. 20대 되고는 밤에 혼자 다니는 게 불편해질 정도가 되었고, 여기저기 부딪치는 건 기본이죠. 한 번은 계단이 있는 걸 모르고 앞으로 직진하다가 떨어져서 오랫동안 깁스한 적도 있었어요.

작업 중인 구작가.

그리고 시야가 점점 좁아져서 나중에는 누군가가 저를 부르려고 손짓을 하거나 다가왔는데 제가 그걸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굉장히 빈번했어요. 그 때 제 병을 알기 전에는 ‘인사도 안 받아주는 도도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항상 받고 지냈어요.

전 스스로 둔감한 사람이에요. 제 몸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 해서 병을 키워서 혼날 때가 많아요. 제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친구가 걱정스럽게 말을 건네더군요. 병원에 가보라고요.

의아했어요. 아픈 데도 없는데 왜 가야 하는지. 친구가 조심스럽게 얘기하더라고요. 자신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곧 있으면 실명을 한다는데 저랑 너무나 비슷하대요. 혹시 모르니 한 번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설마했죠. ‘난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래도 이왕 검사를 받아보고 확인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해서 엄마랑 함꼐 병원에 갔어요. 그때가 30대였어요. 30대가 시작되어서 뭔가 설레던 때였어요. 하지만 야속하게 현실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 날 참 많이 울었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죠. 사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진단을 받았을 때 하필 필리핀으로 떠나기까지 이틀을 앞두고 있었어요. 처음엔 가지 말까 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필리핀으로 갔는데, 거기서 한 남자아이를 만났어요. 그 남자아이는 ‘나는 사진작가가 되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라며 그림을 그려서 보여줬어요.

저는 아무 감흥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 안에 분노가 가득했으니까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라는 분노요. 그래서 저는 애써 무표정으로 영혼 없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베니를 그려줬어요.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서 다들 밥을 먹는데, 그 남자아이는 밥을 먹지 않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려준 베니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종이가 구겨질까봐 아주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품 안으로 안고 밥을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는 분노가 다 사라졌어요. 저는 그 남자아이를 그 때 만나지 않았더라면, 제 병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운이 좋았어요.

-캐릭터 ‘베니’는 어떤 과정에서 탄생됐고,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가실지도 궁금합니다.

구작가의 토끼 캐릭터 '베니'의 탄생기를 담은 인스타툰.
구작가의 토끼 캐릭터 '베니'의 탄생기를 담은 인스타툰.

고등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세상으로 나갔지만, 장애인을 원하는 곳이 극히 드물었어요.삐뚤어진 반항심으로 오래 그려왔던 그림을 5년이나 그만뒀어요. 그동안 저는 다른 직업을 가지기 위해 네일아트로 방향을 바꿨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대회에 상도 타고, 취직도 했지만 소통의 어려움으로 2주 만에 해고가 되었어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을 여러 번 했지요. 이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가 ‘그림’이었거든요.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학원을 잠시 다녔는데, 그 때 캐릭터 수업이 있었어요. ‘어떤 캐릭터를 만들까.’ 고민하면서 이 책 저 책을 다 보다가 두꺼운 동물백과사전까지 보게 되었어요. 그 책을 휘리릭 넘기다가 토끼 부분에서 멈췄어요. 처음엔 귀여운 모습이 눈길을 끌었고, 설명을 읽어보니 ‘동물 중에 가장 청력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글이 있었어요. 그냥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라갔어요. 아마 아무도 원하지 않는 현실에 제 간절한 바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소통의 어려움. ‘너가 나대신 많이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마음이요. 그래서 캐릭터 ‘베니’가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고,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누고 싶어요.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요.

-질환을 앓으시면서 작업 하시는 것도 쉽지 않으실 것으로 아는데, 현재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하고 계신지요?

원래 수작업을 오직 고집을 했어요. 제가 은근 고리타분한 면도 있어서요. 눈이 아프더라도 수작업을 줄곧 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수작업도 버겹게 되었어요. 마침 아이패드가 잘 되어 있어서 수작업에서 아이패드로 바뀌게 되었고, 덕분에 작업을 계속 이어가며 잘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다뤄야 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정말 오래오래 고민을 많이 해요. 아무리 ‘나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도, 결국 내 기준이 들어가기 마련이니까요.

온전하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고민을 참 많이 하다보면 결국 마감을 늦출 때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완성해서 보여드렸을 때,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해주실 때가 가장 보람이 커요.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과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정책에 대한 소견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말씀 주세요.

저는 사람마다 한계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참을 수 있는, 견딜 수 있는,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그런 한계점이요. 사람마다 달라서 힘내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어요. 남들이 보기엔 힘내는 걸로 보이지 않더라도 정말 나는 힘을 내고 있을 때가 있으니까요.

힘내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각자 한계점이 다르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은 당신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희귀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그게 아닐까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짐이 된다’라는 아픈 생각이요. 저도 역시 그랬거든요. 실명을 한다면 안락사까지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짐이 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나는 짐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그 사람에게 ‘행복’이라는 것을요. 그대로 나눠주고 싶어요. 당신은 절대 짐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사랑’이고 ‘행복’이라고.

-최근 희귀난치성질환 인식 캠페인에 참여하셨는데요, 참여 계기가 궁금합니다. 

구작가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대국민 희귀난치성 질환 인식개선 캠페인'의 인스타툰 중 하나. 신경섬유종의 치료 과정과 환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구작가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대국민 희귀난치성 질환 인식개선 캠페인'의 인스타툰 중 하나. 신경섬유종의 치료 과정과 환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요즘 정보가 많아서 넘치고 넘치는 세상이에요. 그러다보니 똑똑한 사람이 많아지고 편리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편견은 아직 존재해요. 사라지지 않았어요. 희귀난치병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주는, 심지어 가족도 몰라주는 외로움을 지니고 있고 가족들도 역시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서 홀로 싸우는 외로움도 지니고 있어요. 그럼에도 모두, 하루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고 이렇게 조용히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꼭 알리고 싶었어요.

제가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할 수 있는 글과 그림으로 희귀난치병들을 조금이라도 알려서 한 명이라도 알게 된다면, 그 한 명이 여러 명에게 퍼뜨리게 될 거고 서서히 퍼져나갈 거라는 믿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캠페인 툰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은 씨앗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씨앗이 당장 큰 나무가 되지 않지만 서서히 자라서 나무가 되고, 열매도 맺어지고 세상이 달라지게 됩니다. 당신도 그런 힘이 있어요.

-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꿈을 계속 꿀 거고, 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거예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