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산업계·의료계·약사계의 이해가 아니라 섬·벽지 등의 지리적 한계와 거동 불가능자와 같은 신체적 한계로 대면진료가 불가능해 비대면진료가 필요한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확대 관점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대표 안기종)는 26일 정부에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대해 이같이 주문했다.
연합회는 "비대면진료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하고, ‘초진’은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 예외적으로만 허용해야 한다"며 "감염병 위기 단계가 ‘심각’ 이상 단계가 아니면 코로나19 확진자도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없으므로 ‘감염병 확진 환자’의 초진 비대면진료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섬·벽지 등의 지리적 한계와 거동 불가능자와 같은 신체적 한계로 대면진료가 불가능한 환자’에게도 초진 비대면진료가 허용돼야 한다"며 "'거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닌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 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환자'의 초진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동 불편'이라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문구는 그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이 초진 대상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휴일∙야간 18세 미만 소아 환자'의 초진 비대면진료 허용도 적절하지 않다. 현재도 휴일·야간에 소아 환자를 대면으로 치료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많지 않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있고, 시범사업을 통해 비대면진료의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소아 환자의 초진 비대면진료까지 허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반복적인 처방을 받는 환자의 재진 비대면진료는 시범사업을 통한 검증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만성질환 환자의 재진 비대면진료 허용기간을 ‘1년 이내’로 장기간 설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의원급 의료기관의 만성질환 진료주기가 일반적으로 2개월인 점을 고려하면 재진 허용기간을 1년으로 하면 1년에 대면진료를 1회 하고 나머지 5회는 비대면진료를 할 수도 있으므로 이는 비대면진료의 대면진료 보충적 역할론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목했다.
만일 비대면진료 수가가 대면진료 수가 보다 높다면 만성질환 환자 대상으로 비대면진료가 남용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시범사업에서는 만성질환 환자의 재진 비대면진료 허용기간을 ‘6개월 이내’로 단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회는 비대면진료의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합회는 "수술·항암치료·이식 등 치료가 종료되어 정기적으로 추적관찰을 하거나 검사 결과의 단순 통보가 필요한 중증질환 환자의 경우에도 비대면진료 필요성이 있으므로 병원급 의료기관에서의 제한적인 범위의 시범사업이 필요하다"며 "이번 시범사업에 신체에 부착된 의료기기의 작동상태 점검이나 검사 결과의 설명과 같은 제한된 범위의 수술·치료 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재진 환자 대상으로 예외적으로 병원급 의료기관에서의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의사단체에서 비대면진료 관련 수가를 150~200%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던 비대면진료 때와 동일한 수준에서 의료기관은 진찰료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관리료 명목으로 130%, 약국은 약제비와 비대면조제 시범사업 관리료 명목으로 130%로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며 "비대면진료 수가 관련해서는 진찰료·약제비는 대면진료·대면조제와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시범사업 관리료는 ‘지리적·신체적 한계로 대면진료가 불가능한 환자’와 ‘대면진료가 가능하지만 편리성을 위해 비대면진료를 받는 환자’를 구분해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리적·신체적 한계로 대면진료가 불가능해 의료서비스 접근권 보장 차원에서 비대면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공익적 관점에서 시범사업 관리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건강보험 재정에서 투입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대면진료가 가능한데도 환자 본인의 편의를 위해 비대면진료를 받는 경우까지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비대면진료 참여 유인을 위해 정책수가 개념으로 130%로 책정한 비대면진료 수가를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고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통한 상시적 활용을 앞둔 시점에서 시범사업 수가도 130%로 동일하게 책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연합회는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진료 허용 여부를 놓고 의료계·시민단체·노동단체와 정부·산업계는 지난 10년 이상 격한 찬반 논쟁과 갈등을 이어왔다"며 "비대면진료 관련한 여러 쟁점이 해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법적 근거도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았고, 2020년 2월 24일부터 비대면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국민 4명 중 1명이 비대면진료 이용 경험이 있는 상황에 비대면진료의 허용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목하고 정부는 의사가 비대면진료를 어떻게 대면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잘 활용할 것인지와 부작용이나 예상되는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를 이번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통해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초진’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면 대면진료의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도 어긋나고, 대면진료와 비교할 때 오진 발생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아,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의료 영역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못박았다.
연합회는 "의료기관이 중개 플랫폼을 이용해 비대면진료를 할 경우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과잉진료 유도 및 의료전달체계 왜곡 등의 의료영리화에 대한 우려를 계속해 제기하고 있다"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은 6월 1일부터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한 한시적 비대면진료 종료에 따른 섬·벽지 등의 지리적 한계와 거동 불가능자와 같은 신체적 한계로 대면진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의료공백을 메우는 공익적 관점에서 설계되고 추진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회도 비대면진료 ‘초진’ 허용 여부, 대면 진료보다 높은 의료수가 문제, 약 배송 허용 여부와 같은 산업계·의료계·약사계의 이해가 아니라 비대면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확대 관점에서 신속하게 환자와 의사 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법적 근거를 신설해야 한다고 정부를 향해 요구했다.
한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가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