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붕괴, 우리의 당면 과제…환우들 목소리 모을 것
당원병이라는 희귀난치질환이 있다. 몸속으로 섭취된 포도당이 글리코겐으로 전환됐다가 에너지가 필요할 때 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이 ‘효소’의 결핍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질환이다. 환자들은 음식을 먹어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어 철저한 식단 관리와 함께 옥수수 100%로 만들어진 ‘아르고전분’을 섭취해 혈당을 유지한다. 제때 전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혈당이 너무 낮아져 저혈당쇼크가 오거나, 간 손상, 신장 질환 등 다양한 장기의 손상으로 위급상황이 발생될 수 있다. 때문에 환자들은 시간에 맞춰 전분을 섭취하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당원병은 결핍된 효소의 종류에 따라 아형이 달라지는데 1형에서부터 9형까지 다양하다.
국내에는 약 400명의 환자들이 당원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약 190명의 환아가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이 곳에는 국내에서 소아 당원병을 유일하게 전문으로 보는 강윤구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있다. 한국당원병환우회 역시 강 교수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터를 옮기면서 주요 거점도시로 원주를 택했다. 지난 5월 20일 한국당원병환우회 발대식과 캠프도 강원도 원주시와 원주세브란스병원, 기업들의 후원 속에 개최됐다.
공식적인 환우회 출범과 함께 한국당원병환우회는 한국희귀난치질환연합회 소속 환우회로 가입하며 ‘환자의 목소리’를 내는데 집중하려 하고 있다. 당장의 해결 과제인 ‘아르고전분’의 안정적 공급에서부터 환아들을 치료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소아과 의료진 양성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환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 한다. 환우회가 발전의 정점을 찍는 시점에 회장직을 자처하고 맡은 ‘서진이 아빠’ 김은성 회장을 뉴스더보이스가 지난달 27일 한국희귀난치질환연합회 회의실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먼저 당원병이라는 질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당원병은 의사선생님들 중에도 잘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정도로 생소한 질환입니다. 저도 저희 아이(서진이)가 생후 8개월 때인 2018년 9월에 처음 진단받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당원병은 당원(글루코겐)이 필요할 때 포도당으로 전환시켜 이용하지 못하는 탄수화물 대사장애 질환을 말합니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면서 혈당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혈당을 올려주는 효소의 결핍으로 저혈당이 급격하게 발생됩니다. 당원병은 여러 유형이있으며, 한국의 경우 I형이 가장 흔합니다. 대부분 저혈당을 막기 위해 하루 4번에서 최대 12번까지 ‘아르고전분(옥수수100% 전분)’이라는 특수 전분을 찬물에 타서 마셔야 합니다. 한마디로 혈당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저혈당이 오고 그로 인해 저혈당 쇼크나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질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구 10만 명당 1명 정도 발병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연평균 2~5명 정도 환우들이 진단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생아 선천성유전질환 검사인 앙팡, G스캔 검사 등으로 생후 14일 만에 당원병유전자 확진이나 보인자라는 결과를 받고 치료를 시작한 아기들도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서진이와 보내는 하루 일상은 어떤가요?
서진이가 당원병 진단을 받으면서 옥수수 100%(아르고전분)로 만든 전분을 구해야 한다는 병원 간호사의 말을 듣고 급히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 없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먼저 나네요. 그 이후 서진이는 하루 12번, 2시간 간격으로 아르고전분을 물에 타서 먹였고, 지금은 하루 7번 전분을 먹고 있습니다. 시간을 맞춰 먹여야 하기 때문에 저녁 9시에 아이를 재우면 11시와 새벽 2시에 한 번씩 깨워 전분을 먹어야 합니다. 저는 서진이가 아픈 뒤로는 이불을 덮고 자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잠이 너무 깊게 들어 아이에게 전분을 제때 먹이지 못 할까봐서요. 아이도 한참 자다 깨서 먹는 것을 거부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좀 기다리다 다시 먹이고 있습니다. 잠은 늘 부족하지요.
-아버님의 수면의 질이 상당히 나쁠 것 같습니다.
아이가 아픈 뒤로는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없습니다. 아내 역시 일을 하고 있고, 한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을 자지 못해서 다음날 너무 힘들어 합니다. 사실 당원병 환아 부모들은 삶의 질이 좋다, 나쁘다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최근 환우회에서 부모님 한 분이 갑상선암을 진단 받았고 다른 한 분은 간암을 진단 받으셨는데 아이들을 지켜내다 보니 부모의 건강에도 무리가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돌 볼 수 있는 시간을 10년 정도로 보고 있는데, 이 때 정도가 되면 지금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환아를 케어하는 부모님도 이렇게 힘든 병인데, 직접적 당사자인 환아들은 더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서진이도 그랬지만 아이들이 철이 빨리 들어요. 아이들은 밥상에 앉으면 저지레도 피우고 해야 하는데 서진이를 보면 그러지 않았어요. 서진이 나이가 지금은 6살인데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꼭 부모의 허락을 받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아이스크림, 과일 등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물론 요즘은 키토제품과 제로제품 등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어서 조금이나마 아이들 간식거리를 준비하는데 부담은 줄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또 아픔을 잘 참아요. 혈당이 떨어지게 되면 젖산, 요산, 중성지방, 케톤수치 등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통증을 유발합니다. 등산이나 마라톤을 하고 난 후 나타나는 근육통, 통풍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심하면 신장결석, 류마티스 등 관절질환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골다공증을 동반한 뼈 관련 질환, 심장비대 등 심장질환, 새벽에 전분을 섭취하면서 나타나는 치아관련 질환 등 각종 질환에 따른 통증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를 더 들자면, 주변의 시선과 편견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원병은 희귀난치성질환이지만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편이라 주변에서 오해나 상처받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를테면 ‘애가 멀쩡하네’라든지 ‘유난 좀 그만 떨어라’ 등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이게 환자 가족에게는 비수처럼 꽂힙니다.
진단 초반에는 어린 서진이에게 12번 전분을 먹여야 했는데 2시간에 한 번씩 먹여야 하니 매일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는 게 일이었고, 발육이 늦어져서 이가 늦게 나와 매번 이유식을 갈아 먹였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주변의 편견은 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원병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당원병은 병원을 통한 의사선생님의 치료가 50%, 가정에서의 관리가 50%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관리가 중요한 질환입니다. 유형별로 다르지만 1형은 가정에서 지속적인 혈당관리와 젖산, 요산수치까지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시로 담당 선생님과 카톡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기적인 입원치료로 아이들의 성장에 따른 전분량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3,6,9형은 주로 간과 근육에 증상이 있는데 주기적인 외래진료와 가정에서 혈당, 케톤수치를 측정해서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단백질을 보충해야 해서 단백질 파우더를 별도로 먹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당원병은 가정에서 한 관리를 병원에서 검사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한마디로 숙제 검사죠. 가정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저성장과 안 좋은 수치들이 혈액검사에서 나옵니다. 그럴 때면 아이한테 미안함이 더 들고,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원병을 가진 환자의 부모로 힘든 부분과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병원마다 의료진의 처방이 상이한 경우가 있습니다. 당원병에 대한 최신 치료 방법을 적용하는 곳과 그렇지 않는 곳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원병은 관리가 중요한 병인데 당원병을 전문으로 보지 않는 병원에서는 과거의 치료 기준으로 환자를 보고 있어 환자 사이에서도 관리가 안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에서 당원병의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원병은 혈당을 관리해야 하는 병이어서 1형 당뇨병과 같이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는데, 데이터 지원 사업들이 넓게 지원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환자 관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성장을 하면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등 교육기관에서의 생활에 대한 제약입니다. 아이들이 전분을 제때 안 먹으면 저혈당 쇼크가 오기도 하는데 모든 것을 부모가 관리하기 힘듭니다. 담임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리고 그에 따른 전분섭취나 급식 때 한 번 더 신경을 써 주시는 분을 만났을 때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대형병원 선호 보다는 당원병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치료의지가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야 치료법이 없는 당원병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이 될 것이고, 각종 합병증이 없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의료진의 인식변화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당원병에 대해 보다 높은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난관이 많네요. 그 중에서도 환자들이 호소하는 가장 불편한 점과 어려움은 어떤 것일까요?
가장불편한 점은 지속적인 관리에 대한 부담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 관리가 잘 되면 육체적인 장애정도가 없어 장애진단을 받지 못합니다. 또 희귀난치성질환이라서 산정특례를 받고 있지만 병원비 외에 더 많이 들어가는 가정에서의 관리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가정에서 필요한 옥수수전분, 혈당, 케톤, 젖산, 요산 측정에 관련된 의료용품, 단백질파우더, 등에 대한 원활하고 안정된 공급, 건강보험적용 등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 외에도 식이를 위해 들어가는 식재료비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매일 고기류를 먹어야 하고, 채소류와 생선류 등 식재료비는 운동선수들 키우는 것 이상의 수준입니다.
어린 자녀의 아이돌봄, 의료비지원, 발달과 재활 교육에 대한 바우처 등 국가지원부분도 소득수준의 경계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맞벌이를 하는 집은 대부분이 기준소득이상으로 판정되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 역시 제 소득은 서진이를 케어 하는데 온전히 들어가지만 지원에 대한 부분은 소득이 기준에 해당되지 못해서 지원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입니다.
-이제 환우회 이야기를 해볼까요? 한국당원병환우회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출범했습니다.
5월 20일 ‘한국당원병환우회’ 발대식과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환우회 시초는 2004년쯤 다음카페가 만들어진 이후 몇몇 분들이 함께 전분섭취, 혈당체크방법 등 아이들 관리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시작됐고 2017년 신촌세브란스에서 미국당원병센터의 당원병 전문가이신 웨인스타인 박사님이 오셔서 세미나를 진행한 이후 전국단위 환우모임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2019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두 번째 전국환우모임을 갖은 뒤 2022년 여름과 겨울 두 번의 환우모임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진행했습니다. 저희 한국당원병환우회가 출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원병에 진심이신 원주세브란스병원 강윤구 교수님의 노력과 병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환우회 운영 방향과 목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당원병환우회는 명실상부한 전국 당원병환우들의 뜻을 대표할 수 있는 단체로 그 첫발을 뗐습니다. 환우회는 무엇보다 당원병에 대한 낮은 인지도 향상에 주력할 생각이며 당원병을 전문으로 볼 수 있는 의료진 지원에도 목소리를 낼 생각입니다.
붕괴 위기에 몰린 소아과 응급의료체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생각입니다. 희귀난치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소아과 의료진 양성을 위해 작지만 목소리를 보탤 계획입니다.
더불어 지속적인 당원병 치료시스템 구축과 환우 및 환우가족들의 의견을 모아 의료계와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 낼 계획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비영리 사단법인 전환과 환우회 사업을 발굴해 당원병 환우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회장님의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합니다.
첫 번째 목표는 서진이가 지금처럼 잘 관리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제가 지치거나 아프지 않고 건강을 유지 하는 것입니다. 저도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 여러가지 건강관리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상황인데 이 목표는 정말 꼭 지킬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두번째는 당원병을 전문으로 치료하고 연구하는 당원병센터가 우리나라에 생겼으면 하고 당원병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의사선생님이 많아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병원에서 당원병 환자들의 치료가 생활하는 지역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지면 환우들이 장거리 이동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세 번째는 현재 해외 제약사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치료제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어서 치료제가 나오길 바래봅니다. 치료제가 나와도 식이조절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정도만 돼도 삶의 질은 몇배 이상 향상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치료제가 나오면 건강보험 적용이 됐으면 하는 바램도 전해봅니다.
마지막으로는 지금 당장의 문제인 ‘아르고전분’의 수입이 중단되지 않는 것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분 공급이 끊기게 될까봐 부모들은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당원병 환자들에게 아르고전분은 생명줄입니다. 아르고전분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게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