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장관 피해자 목소리 직접 들어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의료사고 피해자와 가족·유족의 울분을 풀기 위한 해법으로 ‘주희 3법’을 제안하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피해자 목소리를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연합회는 21일(목) 오후 2시부터 100분간 서울 영등포 대방역 인근 사무실에서 제26회 환자샤우팅카페를 열었다. 사회는 한국백혈병환우회 이은영 대표가 맡았고,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구영신 법무법인 제현 변호사,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솔루션 자문단으로 참여했다. 2012년 6월 27일 1회를 시작한 환자샤우팅카페는 환자·가족이 고충과 피해를 ‘샤우팅(shouting)’으로 쏟아내면, 참석자가 위로(healing)하고 해결책(solution)을 모으는 보건의료 소통 공간으로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자리에는 지난해 12월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 재시도 중 심정지가 발생해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김주희 학생(사고 당시 중3)의 어머니 류선 씨가 나섰다. 주희 학생은 2008년 임신 36주, 1.8㎏으로 태어나 한 달간 인큐베이터 치료를 받았고, ‘10장완 말단 삼염색체 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과 중증 지적장애·척추측만증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 진학 후 키가 자라며 척추측만이 심해져 2024년 11월 26일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교정수술을 받았으나, 11월 30일 폐렴이 생겨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입실 열흘째인 12월 10일 발생했다. 침대 난간 손목 결박용 신체보호대 관리가 부실해 ‘자기발관’(스스로 삽관 튜브 제거)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주희 학생은 희귀질환으로 기도 구조가 길고 좁고 휘어 있는 특수 환자였고, 이 사실은 정형외과 수술기록지, 이비인후과 협진기록지, 중환자실 의무기록지 등에 명시돼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당직의사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고, 사고 5일 전 이비인후과에 요청돼 있던 기도절개 협진도 작동하지 않았다. 의료진 3명이 기도절개 대신 기관삽관만 50분간 16차례 시도했고, 결국 심정지가 발생했다. 17분 뒤 기관절개로 기도는 확보됐지만 주희 학생은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의식을 잃어 현재까지 8개월째 중환자실에서 식물인간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이후 병원과의 소통도 막혔다. 보호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병원장 정식 면담도 이뤄지지 않았다. 병원은 “폐렴이 가라앉아 안정되면 요양병원 전원”만 반복 권유했다. 하지만 주희 학생은 격리치료가 필요한 항생제 내성균(CPE)을 보유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수도권 30여 곳에 전원을 문의했으나 대부분 거절당했다. 4월 이후 폐렴이 네 차례 재발했고 욕창 부위에서 균이 검출된 상태다.
류 씨는 “이대로 요양병원으로 가면 재발 때마다 응급실과 사설 구급차를 전전하는 ‘의료 난민’이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협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났다. 가해자는 침묵하고 국가는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다”며 “환자안전사고 재발 방지장치와 상급종합병원 협진 강화, 중증장애 의료사고 피해자 보호체계 구축은 국가 책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 8월 6일 복지부 장관에게 유사 사고 예방·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환자안전사고 자율보고도 하는 등 제도·입법 개선을 촉구해 왔다고 밝혔다.
자문단은 이번 사건을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환자안전사고”로 규정했다. 안기종 대표는 “신체보호대 관리 부실, 특이 기도 정보 미공유, 요청된 기관절개 협진 미이행, 상급종합병원 협진 시스템 불작동이 겹쳤다”며 “설명과 사과 없이 모든 부담이 피해자와 가족에게 전가되는 현실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했다. 그는 “의료사고 설명의무 법제화, ‘유감 표시’의 증거능력 배제, 의료사고 피해자 트라우마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은경 장관과 국회가 직접 피해자 목소리를 듣고 제도·입법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용진 교수도 “특수한 기도 구조가 기록돼 있었지만 응급상황에 반영되지 않았다. 기본 안전망인 신체보호대·억제장갑 적용도 미흡했다”며 “환자안전은 기술보다 태도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했다.
구영신 변호사는 “진료기록 공유 실패와 신체보호대 관리 부실에서 비롯된 환자안전상의 과실”이라며 “사고 경과·원인·재발 방지책을 설명하고 위로했더라면 분쟁으로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금전 보상보다 존엄과 권리를 지켜주는 제도와 책임 있는 태도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연합회는 정부의 최근 연구결과도 언급했다. 8월 14일 공개된 ‘의료사고 사법리스크 현황 분석 및 함의’에 따르면 20192023년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기소돼 1심 판결을 받은 사건은 총 172건(피고인 192명), 연평균 34.4건이었다. 약식명령까지 포함해도 연평균 45건 내외이며, 실형(징역·금고) 선고는 연평균 34명에 그쳤다. 응급의학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흉부외과보다 정형외과·성형외과의 기소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연합회는 “의료계가 주장해온 ‘과도한 사법 리스크’는 통계와 거리가 있다”며 “해외처럼 피해자 울분 해소, 신속·공정한 배상, 재발방지 대책을 통해 형사고소를 최소화하는 환경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했다.
연합회가 제시한 해법은 이른바 ‘주희 3법’은 ▲의료사고 7일 이내 설명의무화 ▲유감 표시의 증거능력 배제 ▲의료사고 트라우마센터 설치 등이다.
연합회는 “주희 3법”을 명칭으로 내걸고 적극적 입법운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의료사고 형사고소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피해자와 가족의 울분을 해소하는 것”이라며 정은경 장관에게 피해자·유족을 직접 만나 어려움과 울분을 듣는 자리를 공식 요청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