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이라는 말은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체감하지 못한다면 그 말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의료 영역에서 안전은 말이 아니라 곧 제도와 실천이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희귀·난치질환 지원 강화 대책은 바로 그 점에서 주목된다. 환자와 가족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진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 둘째, 신약의 신속한 보험 등재. 셋째, 희귀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공급 기반 강화. 넷째, 의료와 복지를 통합하는 새로운 지원체계 확립이다. 모두 환자단체가 수년간 요구해 온 과제들로,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진정성을 보일 차례다.
환자에게 하루는 곧 생명이다
가장 절실한 부분은 신약 접근성이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허가된 약을 국내 환자가 쓰려면 평균 2~3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병세가 악화되거나 치료 기회를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정부는 허가·평가·협상 절차를 연계해 등재 기간을 최대 90일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행정 효율화가 아니라 환자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정책’이라 부를 만하다.
진료비 부담 완화도 환자 가족에게는 절실한 과제다. 산정특례 본인부담률 인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이 추진된다면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한다. 집을 팔아도 감당하기 어렵고, 결국 가족이 무너지는 일이 반복돼왔다. 이번 대책은 최소한 그 악순환을 끊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국가가 최종 보루가 돼야 한다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와 의료기기는 환자 수가 적어 민간 시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렵다. 정부가 긴급도입을 제도화하고 제약사의 자율 지원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로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2030년까지 매년 10개 이상 희귀의약품을 정부 수입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의료기기 역시 정부가 직접 공급망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국가가 치료제 공급의 최종 보루로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1형 당뇨 환자 지원 강화와 ‘의료-복지연계법’ 제정 추진도 포함됐다. 연속혈당측정 전극의 본인부담률을 낮추고, 소아당뇨 보장성 확대를 검토하는 대책은 국민에게 이 문제가 특정 집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일깨운다. 병원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환자의 일상과 생계를 아우르는 통합 지원체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재정이라는 현실적 고민
그러나 한편으로는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초고가 신약이 급여에 포함되면 단기간에 상당한 재정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환자의 접근성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문제는 균형이다. 정부와 국회가 위험분담제, 선별급여 확대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환자 치료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원론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할지에 대한 해법이 병행돼야 한다.
구호에서 실천으로
과거 정부들도 희귀질환 지원을 수차례 공언했지만, 선언적 구호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이번 대책이 다르다고 평가받으려면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관계 기관 간 칸막이를 넘어 협력하고, 환자단체의 목소리를 정책 설계와 집행에 반영하는 것이 필수다. 제도의 수혜자인 환자가 빠진 정책은 현장에서 늘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국민안전”을 흔히 재난이나 전염병 같은 집단적 위험에서 찾지만, 공동체의 안전은 다수만 지킨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숫자가 적더라도 절실한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안전이다. 희귀·난치질환자 돌봄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넘어, 국민안전이라는 공동체 가치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국민안전’의 가치가 이번 대책에서 비로소 시험대에 오른다. 생활고를 몸소 겪어온 정치인의 경험과 철학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삶을 바꾸는 제도로 이어질 수 있을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희귀·난치질환자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소수라는 이유로, 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미뤄져서는 안 된다. 환자에게 하루는 곧 삶의 전부일 수 있다. 늦지 않게, 망설이지 않게,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때 국민은 비로소 ‘안전’이라는 두 글자를 삶 속에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