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환자단체의 실체가 구체적 데이터로 드러났다. 엔자임헬스 헬스인사이트센터가 1만 1천여 개의 온라인·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전수 조사한 끝에 902개 환자단체를 분석 대상으로 확정하고, 이들의 활동 구조와 운영 실태를 시각화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뉴스더보이스는 엔자임헬스의 902개 환자단체 실태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한 것과 관련해 엔자임헬스 강현우 센터장을 만나 조사 배경과 의미를 들어봤다.
강현우 센터장은 “환자는 더 이상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 과정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며 “하지만 그 파트너의 규모와 특성조차 제대로 알려진 바 없었다. 이번 조사는 환자단체에 대한 첫 기초자료이자, 실질적인 협력과 전략 수립의 출발점”이라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Q. 환자단체 통계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이번 통계 조사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A. 과거 의료 공급자가 치료의 주체였다면, 지금은 환자가 치료 과정의 핵심 파트너이자 주체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파트너인 환자단체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초 데이터는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저희 엔자임헬스 헬스인사이트센터는 보건의료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환자단체의 실체를 시각화함으로써, 막연한 환자 중심이라는 키워드를 넘어 실질적인 협력과 전략 수립의 시작점을 마련해보고자 이번 조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Q. 조사 방식에 대해 자료에 설명이 돼 있는데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 듣고 싶습니다.
A. 조사 설계 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명확하지 않은 환자단체의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였습니다. 내부 논의 결과, 우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10개 질병 분류 키워드를 기준으로 데스크 리서치를 통해 중앙행정기관 및 지자체에 등록된 단체뿐만 아니라, 실제 환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온라인 카페, 밴드 등 커뮤니티 채널까지 광범위하게 스크리닝했습니다.
그 결과 수집된 1만 1천여 개의 데이터 중 광고성·상업적 요소를 배제하고, 최근 1년 내 실제 활동이 확인된 곳을 추려 최종 902개 환자단체를 분석 대상으로 확정했습니다. 이후 이들을 대상으로 회원 수, 개설연도, 운영 주체, 후원/소통 구조 등 기초 특성 분석과 함께 운영실태 관련하여 조직기반, 정보공개, 운영활동, 외부 접근성 4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분석을 진행하였습니다.
Q. 이번 설문조사 결과의 의미와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2014년 환자단체연합회에서 실시한 통계조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와 비교 가능한 변화는 무엇일까요?
A. 환자단체 개설연도 분석을 살펴보면 1990년 태동기, 2000년대 발전기, 2010년대 절정기를 거쳐 현재 성숙기에 들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환자단체가 소수의 자조적 모임을 넘어 다수의 일상적인 연대로 진화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전체 902개 환자단체 중 88.2%가 미등록 민간단체라는 점, 또한 환자단체 측면에서도 조직 체계나 회계 정보를 갖춘 곳이 10% 미만이라는 점 등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보건의료 정책 결정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권 파트너로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던져주는 조사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 환자단체연합회 조사와의 직접 비교는 자료 부재로 어렵습니다.
Q. 환자 커뮤니티의 활동 방식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나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는 환자단체의 설립형태에 따라 정서적 연대와 정보 공유의 강화, 그리고 폐쇄형 소통입니다.
분석 결과, 환자단체의 주 소통 채널은 온라인 카페(61.6%)와 밴드(17.5%) 등 소셜 커뮤니티가 압도적입니다. 이들은 거창한 정책 제언보다는 회원 간의 즉각적인 정서적 지지와 실질적인 투병 정보 교환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또한, 질병 정보의 민감성 때문에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미등록 민간단체의 경우 주요 게시판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비율이 63.4%에 달하는데 , 이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을 유지하려는 환자들의 니즈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됩니다.
Q. 앞으로 2~3년 안에 환자단체 주도 활동이 가장 활발해질 영역은 어디라고 예상하시나요?
A. 질환/질환군별 환자단체 수 관련 조사 결과, 암(165개)과 당뇨병(65개) 관련 환자 단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상대적으로 치료 절박함이 큰 중증·희귀질환과 지속적 관리가 필수적인 만성질환 분야에서의 환자단체 주도 활동이 많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신약 접근성이 생명과 직결되는 희귀·중증 질환 환자들은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더욱 뭉칠 것이고, 당뇨나 아토피처럼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은 일상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거대 커뮤니티로 진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조사 결과 유전 및 희귀질환 단체들이 상대적으로 법인화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그만큼 사회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조직적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Q. 환자단체·환자 커뮤니티가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환자단체가 보건의료 분야의 주요 이해관계자로써 인정받고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줄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활동 중인 900여 개의 단체 대다수가 미등록 상태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이들을 포용할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가진 환자로서 경험, 생활 속 데이터는 헬스케어 산업 발전에도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 등이 환자단체의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등 환자단체가 건강한 조직으로서 발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통계조사와 연계하거나 또는 다른 환자 관련 리서치를 추가로 계획 중인게 있을까요?
A.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구체화할 예정입니다만 이번 조사가 정량적인 환자단체 현황 조사 중심이었다면, 향후에는 실제 환자들이 치료 여정에서 겪는 구체적인 미충족 수요와 정책적 장벽 등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 치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사항에 대한 확인을 해보고자 합니다. 이는 신약 개발이나 필수의료 정책을 고민하는 정부와 제약 바이오 기업들에게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환자) 관점의 가장 확실한 의사결정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Q.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제 우리 사회도 환자를 단순히 치료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가장 강력한 파트너로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보고서가 이러한 사회적 인식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며, 환자단체 또한 보건의료 생태계의 주체로서 본인들의 역할과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