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지난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한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 간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산업계는 대규모 약가 인하에 따른 경영 위축과 산업 기반 약화를 우려하는 반면, 환자단체와 글로벌 제약업계는 치료 접근성 개선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환자·소비자 연대단체는 약가 인하만으로는 제약시장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제도 보완을 요구했다.
“감내 한계 넘었다”…산업계, 약가 인하 폭에 강한 반발
산업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개편안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대위는 국내 제약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산업계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국민 부담 완화를 위해 최대 10% 수준의 약가 인하까지는 감내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으나, 최종 결정된 16% 수준의 인하율은 이를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글로벌 정세 불안으로 유가·환율·운임이 동반 상승하고 원자재 수급 불안까지 겹친 상황에서 단행되는 약가 인하는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넘어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비상경영 체제 전환, 연구개발 투자 축소, 채용계획 조정, 원가 절감을 위한 원료 대체 등 대응 조치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계는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신약 개발 역량 약화와 산업 생태계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국산 원료 사용 ▲원료 직접 생산 ▲국가필수의약품 ▲항생제·소아의약품 생산 등에 대한 약가 우대 정책과 ▲기등재 시점에 따른 단계적 약가 적용 방식은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산업계는 향후 민관협의체를 통해 보다 현실적인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 중심 전환 신호”…글로벌 제약·환자단체 긍정 평가
반면 글로벌 제약기업 단체인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이번 개편안이 환자 중심 보건의료 체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특히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에 대한 신속등재 제도 도입, 약가 유연계약제 확대, 경제성평가 기준(ICER) 개선 등이 혁신 신약의 가치를 반영하고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이러한 제도들이 실제 운영 과정에서 본래 취지대로 구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를 대표하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신약이 허가된 이후 건강보험 급여 적용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치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항암제는 평균 1년 10개월, 희귀질환 치료제는 2년 이상 급여 적용까지 걸리는 사례가 지속되면서 중증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제한돼 왔다.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신속등재 후 평가·조정’ 방식은 이러한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또한 필수의약품 및 퇴장방지의약품에 대한 보상 강화와 공급 안정 대책이 포함된 점도 환자 치료 환경 개선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연합회는 다만 제도 설계와 이행 과정에서 환자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며 민관협의체에서의 실질적 참여 보장을 요구했다.
“약가인하만으로는 부족”…소비자단체, 구조개혁 촉구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로 구성된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이번 개편안이 14년 만의 제네릭 약가 구조 개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근본적인 시장 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약가 인하가 리베이트 경쟁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으나, 제약시장 전반에 걸친 불공정 경쟁 구조가 유지되는 한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기에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약가 인하는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기등재 의약품 약가를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개혁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준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는 기준과 평가 방식이 불명확해 또 다른 형태의 지원 정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제약산업 R&D 투자에 대해서도 성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약분업 이후 수십 년간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지만, 신약 개발 성과나 고용 창출 등 실질적 효과에 대한 체계적 평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리베이트 근절 및 CSO 관리 강화 ▲실질 생산 역량 없는 제약사 퇴출 기준 마련 ▲R&D 투자 성과 공개 ▲실거래가 상환제도 개편 등을 요구하며, 복지부·식약처·공정위가 참여하는 범정부 차원의 제약시장 공정화 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이번 약가제도 개편을 두고 산업계는 산업 기반 약화를, 환자단체는 치료 접근성 개선을, 소비자단체는 시장 구조 개혁을 각각 핵심 쟁점으로 제기하며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다만 모든 이해관계자가 제도 시행 이후 세부 설계와 운영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민관협의체 논의와 정책 보완 방향이 제도 성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