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적 유용성 중심 선등재 뒤 5년간 실사용자료 축적
목표 미달 시 약가 인하·전액본인부담 전환도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공청회=주제발표]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대폭 줄이기 위한 ‘신속등재’ 시범사업 윤곽이 공개됐다. 정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전부터 급여평가 절차를 병행해 허가 이후 100일 이내 등재를 목표로 하되, 등재 당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임상·경제성 근거는 급여 이후 실사용자료를 축적해 사후평가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가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는 이은주 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과 이숙현 심사평가원 신약등재부장이 맡았다.
정부가 제시한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등재 절차를 간소화한다. 둘째, 급여 이후 근거 축적 기간을 부여한다. 셋째, 사후평가 결과를 약가나 급여기준에 어떻게 반영할지 계약 단계부터 명확히 한다.
이은주 사무관은 “희귀질환 치료 접근성을 높이되 사후평가와 급여 조정을 통해 근거 기반으로 책임 있게 관리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라며 “신속한 등재, 근거 축적 및 사후관리 현실 가능성, 현장의 수용성을 균형 있게 설계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희귀질환 치료제, 일반 신약 절차 적용 땐 등재 지연
복지부는 신속등재 추진 배경으로 희귀질환 치료제의 구조적 한계를 들었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고 개발 치료제가 많지 않으며 생존을 위협하는 질환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비교 평가 약제가 없거나 충분한 임상 근거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일반 신약과 동일한 급여 절차를 적용하면 등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2021~2025년 최근 5년간 전체 급여 등재 약제 중 희귀질환 치료제 비중은 연도별로 5.0~44.4%였다. 2025년에는 전체 급여 등재 약제 36개 중 16개, 44.4%가 희귀질환 치료제였다.
그동안 정부는 급여평가 검토기간 단축, 경제성 평가 면제, 허가-평가 병행 제도 등을 도입해 등재 기간을 줄여 왔다. 하지만 심평원은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총 360일, 1년의 긴 등재 소요기간”, “비용효과성 평가로 인한 심층 분석”, “임상 데이터 부족”, “환자 치료 접근성 지연”이 여전히 문제라고 진단했다.
대상은 A8 3개국 이상 등재 희귀질환 치료제…대체약제·중증도·재정영향 종합 검토
시범사업 신청 대상은 희귀질환 치료제 중 외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 급여된 약제가 기본 요건이 될 전망이다. 심평원은 “주로 보는 A8 국가 중 3개국 이상에서 3개월 이상 등재된 약”을 검토 대상으로 삼고, 희귀질환 산정특례 질환 치료제로 한정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상 선정 때는 대체약제 유무, 질환 중증도, 신속 도입 필요성, 재정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 특히 기존 치료제로 대체 가능한지, 생존을 위협하는 질환인지, 식약처 신속허가 대상인지, 재정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가 주요 검토 요소로 제시됐다.
이숙현 부장은 “허가가 완료된 품목뿐 아니라 허가 신청 중인 품목까지도 결정 신청할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라며 “빠른 접근이 필요한 의약품의 전제조건으로 대체약제가 없는 부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시범사업 추진 결과를 바탕으로 본사업 전환 시 대상 요건을 재검토할 계획이다.
허가 전 급여평가 병행…허가 후 심평원·공단·복지부 각 1개월
이번 방안의 핵심은 허가 전 급여평가 절차 병행이다. 현행 절차에서는 식약처 허가심사 120일, 심평원 급여적정성 평가 150일, 건보공단 약가협상 60일, 복지부 고시 절차 30일 등 총 360일가량이 소요된다. 신속등재안은 식약처 허가심사와 급여평가를 병행하고, 심평원 평가와 공단 계약 절차를 각각 1개월 수준으로 단축해 허가 후 100일 이내 등재를 목표로 한다.
심평원 평가는 임상적 유용성 중심으로 이뤄진다. 임상시험 결과, 제외국 등재·평가 현황, 학회 의견 등을 토대로 대체 가능성, 질병 위중도, 치료적 이익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급여기준을 설정한다.
이숙현 부장은 “현재 하고 있는 방식에서 심평원이 기준과 경제성 평가를 포함한 비용효과성을 보는 기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이라며 “공단도 약가협상 부분을 간소화해 산출된 약가로 계약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심평원은 급여기준소위원회에서 급여기준안을 검토하고, 위험분담제소위원회에서 성과평가계획서를 검토한 뒤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상정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이 부장은 “사후평가 등 위험분담제소위원회 안에서 성과평가계획서가 검토될 예정”이라며 “이 부분이 현재 제도와 비교해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선등재 대신 사후평가 강화…5년간 RWE 축적
신속등재는 사실상 ‘근거 생산 조건부 급여’ 구조로 설계된다. 급여 전 단계에서 제약사는 임상성과평가계획서를 제출하고, 심평원은 이를 평가한다. 급여 이후 1~3년차에는 실사용자료와 임상자료를 수집하고, 4년차에는 제약사가 비용효과성 평가 자료와 실제근거 결과보고서를 제출한다. 5년차에는 심평원이 사후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급여 조정 여부를 판단한다.
성과평가계획서에는 대상 환자 및 약제, 결과변수와 성과기반 목표치, 평가주기와 기간, 급여 조정안, 임상성과 평가결과 산출 방법, 자료 수집 절차와 품질관리 방법 등이 포함된다.
사후평가 결과에 따라 사전 목표를 달성하면 약가와 급여가 유지될 수 있다. 반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급여 유지 시 약가 인하가 검토된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불성실하게 제출하는 경우에는 전액본인부담 전환도 가능하도록 검토 중이다.
이숙현 부장은 “1~3년차 임상자료가 잘 수집돼야 성과 기반 평가와 이후 비용효과성 평가가 가능하다”며 “제약사는 계약기간 내 여러 차례 중간분석 결과를 제출해야 하고, 이는 기간 만료 평가에도 반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도 사후평가 기준과 급여 조정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은주 사무관은 “사후평가와 급여 조정이 신뢰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레지스트리 구축 추진…청구자료·의료기관 임상자료 연계
사후평가의 관건은 자료다. 정부와 심평원은 청구·심사자료와 의료기관 임상자료를 연계한 레지스트리 구축을 추진한다. 요양기관이 보유한 임상자료, 심평원 청구·심사자료, 제약사가 수집한 실제자료를 결합해 평가 가능한 수준의 근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심평원 자료는 레지스트리 구축 방식으로 요양기관 임상자료와 심사평가원 청구·심사자료를 구분해 제시했다. 요양기관 자료에는 EMR 자료, 텍스트형 비정형 자료, 급여기준 평가시점 및 모니터링 검사결과, 기능평가 점수, 삶의 질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심평원은 요양기관·임상학회와 협력해 시범사업으로 해당 자료를 추가 수집할 예정이다.
이숙현 부장은 “레지스트리 구축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라며 “청구자료 기반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EMR 자료 연동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가는 A8 조정 최저가의 90% 검토…총액계약도 병행
약가 산정은 제외국 약가를 기반으로 할 전망이다. 심평원은 제약사의 수용성을 고려해 A8 조정 최저가의 90%를 검토하고 있다. 경제성 평가가 생략된 약제에서 비용효과성 수준을 고려한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총액계약도 병행된다. 1차년도 총액은 제약사가 제시하고, 2차년도에는 실제 청구액을 기반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검토된다. 총액 최대 기준은 신약 연도별 평균 예상청구액과 제약사 제시 수준 등을 고려해 설정한다. 2차년도 총액은 1차년도 실청구액이 총액의 일정 기준 이하인 경우 실청구액 기준 일정 배율로 조정하는 방향이다.
이숙현 부장은 “실무 의견은 90% 최저가를 산출하려는 것”이라며 “1차년도에는 제약사가 제시한 부분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협상 내용을 간소화하고, 2차년도에는 1차년도 실적을 확인하면서 일정 기준 이하인 경우 재조정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계약에는 성과평가 사후관리, 자료제출 의무, 의약품 안정 공급 의무도 포함될 예정이다. 특히 임상성과 기반 급여 조정안에 따라 평가 후 약가 인하나 급여기준 조정이 이뤄질 수 있고, 사후평가 후 조정 근거와 절차·결과 공개도 계약 사항으로 검토된다.
영국·캐나다·독일도 신속등재 후 RWD 기반 사후평가
심평원은 해외 사례도 함께 제시했다. 영국은 2025년부터 항암제, 희귀질환 유전자치료제, 혁신적 치료제 등을 대상으로 허가·평가 병행 방식의 신속등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는 2023년부터 희귀질환 치료제와 조건부 허가 혁신치료제 등을 대상으로 TLR-pTAP 제도를 운영 중이다. 독일은 모든 신약에 대해 AMNOG 제도를 적용한다.
공통점은 신속등재 이후 실사용자료를 활용해 사후평가를 실시한다는 점이다. 심평원은 “최근 각국이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해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 혁신적 치료제를 대상으로 신속등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신속등재 후 RWD 기반 근거 생산 조건부 급여 형태로 운영하고, 국가 레지스트리 구축과 활용을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숙현 부장은 “외국에서도 희귀질환 치료제 기반 신속등재 요구가 계속 있다”며 “신속등재 이후 실사용자료 기반 근거 생산 조건부 급여 형태로 운영되고, 국가가 데이터를 수집해 재평가 때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 뒤 최종안 마련…건정심 보고 후 시범사업 공고
정부는 공청회 이후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추가로 수렴해 최종 시범사업 추진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보고를 거쳐 시범사업 대상 공고와 선정 절차를 추진한다. 시범사업 운영 경과를 점검하고 필요한 규정 개정을 거쳐 본사업 전환도 검토한다.
이은주 사무관은 “본사업 전환은 시범사업 대상 약제의 등재가 끝나는 시점이 아니라, 시범사업 중에도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검토되고 규정 근거가 마련되면 추진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며 “구체적인 일정은 제도 설계와 의견 수렴 결과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