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족 참여 바자회 이어 민관 정책 논의…“삶 중심으로 관리법 보완해야”
희귀질환 환자의 진단과 치료는 물론 돌봄·복지·고용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통합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다. 환자의 삶 전체를 중심에 둔 희귀질환관리법 개정과 치료제의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 안정적인 공공 재정 기반 구축 등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2026 희귀질환 국가책임 비전선포 및 희망나눔바자회’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의 현실 그리고 대안 마련을 위한 오픈 테이블 미팅’을 개최했다고 16일 밝혔다.
행사는 서영석·한지아·이수진·소병훈·성일종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연합회가 주관했다. 서미화·정태호·서영교 의원도 비전선포식과 희망나눔바자회에 참석해 희귀질환 국가책임 강화에 뜻을 보탰다.
환자들이 직접 알린 질환과 일상의 어려움
오전 국회 소통관 앞마당에서 열린 희망나눔바자회에는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직접 참여했다.
디엔엠원(DNM1)유전자환우회,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한국골형성부전증모임, 한국저인산효소증환우회, 한국 중증 호산구성 천식 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 END NF 신경섬유종 환우회, 한국시신경척수염환우회 등이 직접 제작하거나 준비한 물품을 판매했다. 시민들에게 각 질환의 특성과 환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도 알렸다.
행사장에는 토끼 캐릭터 ‘BENNY’ 구경선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희귀질환 환자 이야기 전시와 작가 사인회, 국내 바이오벤처의 혁신기술 전시도 마련됐다.
국내 희귀질환 질병부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진단 지연과 치료 접근성의 한계, 가족의 돌봄 부담, 경제활동 제약 등 환자와 가족이 마주한 현실도 소개됐다.
전문기관 역량 높이고 치료제 급여 진입 앞당겨야
이어진 국가책임 비전선포식에서는 ‘희귀질환 정책 혁신을 위한 공동 비전 선언문’이 발표됐다.
공동 비전은 ‘진단에서 치료, 돌봄까지 누구도 희귀질환으로 인해 소외되지 않는 대한민국’을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희귀질환 정책이 질환 지정과 일부 의료비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환자의 삶 전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으로는 희귀질환 전문 진료체계와 권역별 전문기관 역량 강화가 제시됐다. 희귀질환 치료제가 신속히 건강보험에 등재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담겼다.
의료비 지원을 넘어 돌봄·복지·고용·소득·교육·심리지원을 연계하는 통합 체계를 구축하고, 희귀질환관리기금 도입을 포함한 안정적인 공공 재정 기반을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희귀질환관리법 발전과 환자 중심의 상시 협력 거버넌스 구축도 주요 과제에 포함됐다.
서영석 의원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희귀질환이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며 “오늘의 공동 비전이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희귀질환관리법을 비롯한 관련 제도와 입법·재정적 보완 방안을 적극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한지아 의원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진단과 치료뿐 아니라 돌봄, 교육, 고용과 경제활동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며 “환자와 가족의 목소리가 제도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도 필요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질환 지정 여부보다 환자의 필요·중증도 살펴야”
오후에는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환자의 목소리에서 정책의 변화로’를 주제로 오픈 테이블 미팅이 열렸다.
환자단체와 의료계·학계·정부·언론·산업계 관계자들은 환자와 가족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바탕으로 희귀질환관리법과 관련 지원제도의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발제를 맡은 권용진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의 어려움이 치료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진단 지연과 치료 접근성의 한계, 돌봄 부담, 경제활동 제약 등 삶 전반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개별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 진단과 치료, 돌봄, 복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질환 지정 여부만으로 지원 대상을 나누기보다 환자의 의료적 필요와 중증도,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환자 중심 접근을 제안했다.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과 지원제도를 직접 찾아다니지 않도록 진단 이후 치료와 복지서비스를 연계하고, 정책 수립과 의사결정 과정에 환자와 가족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성일 경희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임상 현장에서 경험한 희귀질환 진단·치료 접근성의 한계를 설명했다. 희귀질환관리법 개정은 단순한 지원 확대를 넘어 환자가 적시에 진단받고 필요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의 삶이 정책 출발점 돼야”
정진향 연합회 사무총장은 “희귀질환 정책은 개별 사업 중심의 지원을 넘어 환자와 가족의 삶 전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와 가족이 실제로 경험하는 어려움이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희귀질환관리법도 진단·치료·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도적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환자의 삶을 중심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이번 행사가 환자와 가족이 자신의 삶을 직접 알리는 데서 나아가 국가책임 강화를 위한 공동 비전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법·제도 개선 방향까지 논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비전선포식과 오픈 테이블 미팅에서 제시된 의견을 토대로 국회·정부·의료계 등과 후속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희귀질환관리법을 질환 지정과 의료비 지원을 넘어 진단·치료·돌봄과 환자 가족의 삶까지 포괄하는 법적 기반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