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접근성·리툭시맙 1차 확대 등 급여 기준 개선 촉구
박응규 부위원장·신현민 고문(희귀면역질환 회복정책위원회) 인터뷰
단 한 번의 재발만으로도 실명이나 전신 마비 등 비가역적인 장애를 남기는 희귀질환,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NMOSD). 최근 재발률을 0%에 가깝게 낮추는 혁신 신약들이 등장했지만, 국내 환자들은 "더 아파야 약을 쓸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급여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에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와 한국시신경척수염환우회 산하로 출범한 '한국희귀면역질환 회복정책위원회'의 박응규 부위원장과 신현민 고문을 만나, 이들이 거리로 나서 '치료 시점의 전면 전환'을 외치는 이유를 들어봤다.
"재발을 겪어야 치료해주는 구조, 생존권 위협한다"
박응규 부위원장은 이번 정책위원회 설립 배경에 대해 "환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방패'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동안 환우회가 정서적 지지와 정보 공유의 장이었다면, 정책위는 제도적 장벽을 허물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 조직이라는 설명이다.
정책위원회는 현재 ▲신약 급여 접근성 확대 ▲간병비 지원 제도 확대 ▲희귀질환 기금 설립 ▲국가 희귀질환 전문센터 구축 등 4대 과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부위원장은 "시신경척수염은 재발 예방이 치료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현재 급여 구조는 재발 이후에야 신약 사용 기회를 주는 '사후약방문' 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지난해 정책 토론회와 국정감사를 거치며 환자들의 목소리가 전달됐음에도 현장의 변화가 미비하자, 환자와 가족들이 지난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직접 거리 시위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신약 재발률 0%인데... '1년 내 2번 재발' 해야 급여? 비합리적"
정책위원회가 꼽은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약 급여 문턱의 하향'이다. 현재 울토리미스(라불리주맙) 등 효과가 입증된 신약을 쓰기 위해서는 기존 치료 중 '최근 1년 이내 2번' 또는 '2년 이내 3번'의 재발이 있어야 한다.
박 부위원장은 "재발률이 0%에 가까운 약이 있음에도 굳이 재발을 두 번이나 겪으라는 것은 환자에게 더 장애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성토했다.
신현민 고문 역시 이에 동의하며 "치료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먼저 공급되어야 한다"며 "현재의 구조는 재발 억제 효과가 낮은 약제를 쓰며 추가 재발을 기다리게 만들어, 결국 환자를 비가역적인 신경 손상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 딸의 28년 투병... 다른 젊은 환자들은 평범한 삶 살길"
인터뷰 중 박 부위원장은 환자 보호자로서의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의 딸은 17세에 발병해 현재 45세가 되었지만, 오랜 오진과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친 탓에 현재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으며 한쪽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다.
"딸이 '나와 같은 과정을 겪는 젊은 환자들이 없게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그는, 20년 넘게 간병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의 이야기까지 전하며 이 질환이 가족 전체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역설했다.
신 고문 또한 "초기에 신약이 공급됐다면 직장을 잃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행정적인 숫자나 기준보다 사람의 생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위가 정부에 제안하는 3대 급여 개선안
박응규 부위원장은 “정책위원회가 이번 시위를 통해 제안하는 핵심은 치료 시점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급여 기준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 리툭시맙을 1차 치료 단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급여 기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다른 치료에 실패한 이후에야 사용이 가능한 구조는 질환 특성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둘째, 효과가 입증된 신약 치료제에 대해서는 보다 빠른 시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재발을 여러 차례 겪은 이후에야 사용이 가능한 구조가 아니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조기에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셋째, 중증 환자의 경우에는 재발 횟수와 관계없이 보다 빠르게 치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으며, 리툭시맙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한 환자에 대해서도 재발 여부와 관계없이 신약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 부위원장은 "특히 리툭시맙이 1차 치료제로 확대되더라도, 표적치료제인 신약의 급여기준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리툭시맙 부작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은 또 다른 치료 장벽에 직면하게 된다"며 "이에 신약의 급여 기준을 완화해, 진단 초기부터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의 일이라 생각한다면 지금의 기준이 충분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이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현장의 괴리를 지적했다. 정부가 희귀질환 국가 책임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환자들은 고가의 의료비와 까다로운 급여 기준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신현민 고문은 "최근 정부가 희귀질환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보고, 의료비 부담 완화와 치료제 접근성 개선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방향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산정특례 본인부담률 인하, 희귀질환 치료제의 급여 등재 기간 단축, 필수 의약품의 공적 공급 확대 등 여러 제도 개선이 발표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제도 개선이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고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응규 부위원장은 정부 관계자들을 향해 "만약 당신의 자녀가 단 한 번의 재발로 실명할 위기라면 지금의 기준이 충분하다고 하겠느냐"고 물으며, "환자들이 장애 없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환우분들께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낼 때, 이 어두운 터널의 끝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환우들과 함께 손을 잡고, 재발 없는 세상을 향해 끝까지 목소리를 내며 나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