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로그]는 환자들이 직접 기록하고 전하는 삶의 기록입니다. 질병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누구나 평범한 내일을 꿈꾸지만, 어떤 이들에게 '내일'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로그는 자고 일어나면 시력이 사라지고 마비가 찾아오는 희귀질환, NMOSD(시신경척수염 범주 질환)와 싸우고 있는 환우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약 20년의 투병 생활 속에 담긴 아픔과 희망,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치료의 현실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여군을 꿈꾸던 소녀, 17살에 멈춰버린 운동장
발병 전의 저는 참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군복을 입은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였고, 부대에 놀러 가 만나는 군인 아저씨들을 보며 ‘나도 멋진 여군이 되어야지’ 결심하곤 했죠. 체육 시간은 제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었고, 운동장을 누구보다 신나게 뛰어다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하지만 열일곱 살, 제 삶은 발병 전과 후로 완전히 나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서 아침 자습을 하려고 고개를 딱 들었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짝꿍에게 "전화기 있는 데까지만 좀 데려다달라"고 부탁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NMOSD라는 병과 평생을 싸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친구들과 즐겁게 수업을 듣고 체육 활동을 할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어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세상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시신경으로 재발이 오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고, 척수로 오면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아침을 맞이해야 했으니까요.
제 방 문앞에는 늘 엄마가 준비해둔 ‘응급실 가방’이 놓여 있었습니다. 재발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그 가방을 들고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죠. 병원에서의 2주는 제 일상이 통째로 삭제되는 시간이었어요. 퇴원 후엔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하루 12알씩 삼키며 조금씩 양을 줄여가는 고단한 회복기가 이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정성껏 시간표를 새로 그렸지만, 그 계획들은 한두 달 뒤 찾아오는 다음 재발 앞에서 번번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차가운 파란색 수술실, 그곳에서 들은 절망의 이름
병명을 정확히 알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로 긴 터널 같았습니다. 동네 안과와 종합병원을 전전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원인이 100가지 중 하나라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셨죠. 그러다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호출을 받았던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시장통처럼 시끄럽고 환자들이 바닥에 누워있던 붉은빛 응급실을 지나 들어선 수술실은, 마치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파랗고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정막 속에서 의사 선생님은 ‘다발성 경화증(이후 시신경척수염으로 정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꺼내셨어요. 앞으로 주기적으로 재발하며 장애를 남기게 될 거라는 선고와 같았죠. 그 차가운 공간에서 엄마와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은 제 인생에서 가장 시린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십 차례의 재발 끝에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휠체어를 타는 일상이 익숙해졌고, 다행히 가족들의 따뜻한 지지 덕분에 장애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아요. 하지만 가끔 마트에서 만난 아이가 저를 가리키며 “장애인이다!”라고 외칠 때면, 내가 남들과는 다른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했습니다.
재발을 막으려 잠재운 면역, 숙명이 된 폐렴
치료 과정은 또 다른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한때는 스치기만 해도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지독한 통증에 시달렸어요. 집에 혼자 있을 때 팔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경련이 오면 바닥에 쓰러져 낑낑대며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24시간 누워만 지내며 엄마가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을 때의 죄송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가장 지독했던 기억은 코로나19 시기에 찾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확진되었고, 면역력이 약했던 저 역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급성 폐렴으로 입원했습니다. 열흘간 24시간 내내 쏟아붓는 과한 항생제 탓에 설사가 멈추지 않았어요. 휠체어조차 타기 힘든 저를 위해, 아직 코로나에서 회복되지도 않은 엄마는 밤낮으로 제 대소변을 받아내며 곁을 지키셨습니다.
그렇게 퇴원하고 채 2주도 지나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급성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저 때문에 쌓인 피로와 무리한 간호가 어머니를 무너뜨린 것 같은 죄책감과 ‘만약 처음부터 나에게 정말 적합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발을 막기 위해 선택한 치료가 오히려 제 면역을 앗아갔고, 결국 사랑하는 가족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보이지 않는 아픔, 그 너머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시신경척수염은 환자마다 증상이 천차만별입니다. 저처럼 휠체어를 타는 사람도 있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서 오히려 오해를 받는 환우들도 많아요. 조금만 과로해도 체력이 바닥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업무 현장에서 ‘몸을 사린다’는 시선을 견뎌내곤 합니다.
만약 면역력을 완전히 죽이지 않고도 재발을 막아주는 신약을 쓸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감기 걸린 사람을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되고, 폐렴 걱정 없이 밖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평범한 일상. 그 소박한 자유가 저에게는 가장 간절한 꿈입니다.
이 질환은 여전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질환입니다. 이번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이 ‘시신경척수염(NMOSD)’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겪는 이 과정들이 단순히 ‘특혜’나 ‘게으름’이 아닌, 평범한 내일을 되찾기 위한 치열한 삶의 투쟁임을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