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챌린지·SNS로 참여…환자 경험 알리고 지지·연대 모색
환자를 병원 안에서 치료받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학교와 직장,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바라보자는 공동캠페인이 시작됐다. 환자의 목소리를 듣고 일상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서 나아가 시민의 참여와 행동을 끌어내겠다는 취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상연재 시청점 별관에서 ‘우리 곁에 환자, 환자 곁에 우리: 어쩌면, 우리 이야기’ 공동캠페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캠페인은 ‘듣기(Listen)·이해하기(Understand)·함께하기(Act Together)’를 주요 방향으로 삼았다. 환자와 가족의 경험을 사회에 알리고, 환자를 향한 공감을 지지와 연대로 확장해 실제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오늘 이웃의 이야기가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
이영신 KRPIA 부회장은 인사말에서 캠페인 슬로건인 ‘어쩌면, 우리 이야기’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질병은 오늘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고 내일은 내 가족의 이야기이며, 결국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며 “환자는 치료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건강과 삶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환자 권리와 안전을 중심에 둔 제도 변화가 실제 삶에 뿌리내리려면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환자기본법은 올해 4월 28일 제정돼 내년 4월 2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캠페인은 환자의 이야기를 ‘우리 이야기’로 느낄 수 있도록 공감의 폭을 넓히기 위해 두 단체가 마음을 모아 시작한 것”이라며 “환자의 권리와 안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환자를 중증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모습과 동일시하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환자가 꼭 병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퇴원한 뒤 외래진료를 받으면서 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가족을 돌보거나 친구를 만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법이 제정됐다고 현장에서 저절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를 바라보는 인식부터 달라져야 법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며 “환자를 이해하려면 환자의 목소리와 경험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환자단체만의 활동에 머물지 않고 제약업계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함께해야 캠페인의 파급력을 넓힐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안 대표는 이번 기자간담회를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출항시키는 시작점으로 표현하면서, 환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의료현장의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모두가 함께하는 행동...필사하고 공유하고 연결한다
공동캠페인은 현장과 온라인에서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캠페인 현장과 관련 행사에서 참여자들이 메시지에 공감하고 직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 곁에 환자, 환자 곁에 우리’ 문구를 자신의 글씨로 쓰는 캘리그라피·필사 챌린지도 진행한다. 캠페인의 의미를 각자의 글과 메시지로 표현하고 이를 주변에 공유하도록 하는 참여형 활동이다.
온라인에서는 공식 인스타그램 ‘@withpatients_kr’과 링크드인을 활용한다. 참여자는 공식 콘텐츠를 팔로우하거나 ‘좋아요’를 누르고 게시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동참할 수 있다. 캠페인 포스터와 취지, 필사 챌린지 참여 콘텐츠 등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 KRPIA와 회원사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할 계획이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질의응답에서 SNS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접근성과 참여 편의성을 들었다.
이 이사는 “환자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이자 가족”이라며 “쉽게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인식 전환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해 SNS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대를 막론하고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고 정부기관이나 국회 등도 쉽게 뜻을 같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환자들이 자기 권리와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환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인화 KRPIA 전무는 캠페인이 환자와 일반인 사이의 인식 차이를 좁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일반인이 환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주로 경제적 지원으로 생각하는 데 비해, 실제 환자와 가족은 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인식, 직장과 학교의 배려, 낙인 해소 등 일상과 정서에 관련된 지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최 전무는 “환자가 실제로 겪는 어려움과 원하는 도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소통 방식을 통해 환자단체와 회원사 구성원들이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 이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사례 잇고 학교 교육까지…후속 활동 모색
질의응답에서는 SNS 참여를 넘어 환자의 구체적인 삶과 경험을 캠페인에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환자 사례를 통해 질병이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참여자들이 서로 연결돼 공감과 지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공동캠페인 태스크포스(TF) 리더인 홍새롬 한국비엠에스제약 전무는 “환자를 위해 일하고 환자를 중심에 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환자를 타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캠페인을 논의하며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시작하면 공감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연대와 지지가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다”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한 환자 사례가 연결되고 공감과 지지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번 활동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후속 시즌으로 이어가겠다는 구상도 제시됐다. 홍 전무는 현재 캠페인을 시즌1로 규정하면서 내년과 내후년에도 시즌2·시즌3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TF와 양 단체, 회원사들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교육과 연계하는 방안도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안됐다. 안기종 대표는 캠페인이 이제 막 출발한 만큼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학교에서 환자와 관련된 내용을 교육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특히 학교에 다닐 때 받는 교육은 인식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학교 교육을 비롯한 후속 활동은 이날 의견으로 제시된 단계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향후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논의할 예정이다.
“누구나 환자 될 수 있다”…현실의 간극 확인
캠페인 일환으로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도 이날 발표됐다. 조사는 지난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환자·가족 569명과 만 19세 이상 일반인 500명 등 총 106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환자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태’라는 데 환자·가족의 88.0%, 일반인의 85.6%가 동의했다. 반면 환자·가족의 60.3%는 사회생활과 직장, 학교 등 일상에서 한 가지 이상의 어려움이나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보건의료 정책에 환자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응답은 환자·가족 91.2%, 일반인 75.2%였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환자의 현실에 대한 이해와 국가·사회의 역할 인식에는 여전히 간격이 있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안기종 대표는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 곁의 환자가 차별이나 불이익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함께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번 캠페인이 공감을 지지와 연대로, 연대를 행동으로 이어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신 부회장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던 일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작은 씨앗 하나를 심을 준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가 환자 곁에 있고 환자가 우리 곁에 있으며, 많은 사람이 함께한다면 벽돌을 하나씩 쌓듯 사회의 인식을 바꿔갈 수 있다. 앞으로도 제안하고 함께해 달라”고 했다.
